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들어갈 집이 없다. 서울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다. 서울이 공급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 인천 등 다른 수도권과 달리 충분한 가구를 지을 만한 땅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땅이 없는 서울에서 집을 공급할 충분한 땅이 나온다면 어떨까. 서울에서 나올 수 있는 최우선 부지로는 미군이 반환하는 용산기지가 꼽힌다. 가뜩이나 땅이 없는 서울에 이만한 부지가 나온다면 대규모 개발까진 아니지만 당장 부족한 공급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공급 가뭄' 서울, 얼마나 심각한 상황일까15일 통계청에 따르면 가장 최신 통계인 2023년 말 기준 서울 주택 보급률은 93.6%를 기록했다. 14년 만에 최저치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하락했다. 경기도는 99.3%, 인천은 99.1%다. 주택보급률이 100% 미만이면 집보다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단 얘기다.
주택 보급률이 100%라도 모든 실수요자가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는 집(멸실 주택)이 있을 수 있고 한 사람이 집을 여러 가구 가지고 있는 경우(다주택자)도 있어서다. 집값이 안정되려면 충분한 공급이 필요한 셈이다.
서울에선 주택 공급이 적정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 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아파트만 놓고 봤을 때 서울의 적정 수요는 4만6609가구다. △2019년 4만7324가구 △2020년 4만6037가구 등 적정 수요 수준에서 아파트가 공급됐다.
하지만 △2021년 3만1909가구 △2022년 2만4786가구 △2023년 2만5127가구 △2024년 1만9606가구 등 적정 수요에 한참 모자라는 공급이 계속됐다. 올해는 4만6353가구로 적정 수요를 웃돌았지만 △2026년 4165가구 △2027년 1만306가구 △2028년 3080가구 △2029년 999가구 등 기준선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집이 얼마나 공급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인허가 물량도 부족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주택통계(잠정치)에 따르면 서울 인허가는 1627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4% 줄었다. 서울 지역 분양도 2034가구로 같은 기간 54.3% 쪼그라들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정부가 내놓은 9·7 대책은 핵심 수요 분산이 아니라, 수도권 외곽 및 도심 저활용지 수요 대응에 집중된 구조"라면서 "실수요자들이 몰리는 강남 3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한강 벨트 주요 지역의 수요를 흡수하기에는 입지·상품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용산기지, 대책이 될 수 있을까주한미군 용산기지 부지는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약 300만㎡의 땅을 말한다.
용산기지에 공공주택을 공급하자는 의견은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용산 미군기지 반환이 논의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나왔던 얘기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국가공원 조성 방침을 결정하고 2007년 용산공원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 다시 의견이 제기됐다. 용산기지에 공공주택을 공급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한두 달 사이 100건이 넘었다. 집값이 폭등하면서다.
용산기지의 입지 조건은 우수하다. 서울 도심과 여의도, 강남과 모두 가깝고 서울 지하철 1호선, 4호선, 6호선을 비롯해 광역교통망이 잘 연결돼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도 예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등 문화·역사 시설도 들어서 있다.
최근 SBS '교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한 김경민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지구에 약 150만평(약 495만8677㎡)의 연면적이 개발될 예정인데 다수는 오피스로 공급한다고 한다"며 "이 부분이 이해되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오피스 직군의 실업률은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오피스를 공급해서 뭐 하겠느냐"며 "약 3분의 1 정도만 오피스로 짓고 나머지는 주택으로 공급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서울시에서 공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해당 부지에서 약 6000가구의 주택이 공급될 예정인데 3500가구는 오피스텔"이라면서 "150만평 중 100만평(약 330만5785㎡)에 주택을 공급한다고 하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정도는 공급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2024년 서울시 고시에 따르면 계획된 오피스텔은 2500가구로 김 교수가 주장한 내용과 일부 차이가 있다.
이런 얘기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용산 정비창은 서울에서 가장 좋고 가장 넓은 입지"라며 "정비창 부지에 아파트가 공급될 수 있도록 진지하고 빠르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2021년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군이 떠난 용산기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용산기지의 20%인 60만㎡를 활용해 평균 공급면적 70㎡의 공공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이미 도시 계획 수립…"도시 경쟁력 측면서도 주택 공급 어불성설"서울 용산정비창 부지는 이미 도시계획이 수립된 상태다. 서울시는 최근 제15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 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 작년 11월 지난해 11월 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 고시 이후 실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존 계획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계획을 보완해왔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교통체계의 핵심인 용산역을 중심으로 각 획지로 뻗어나가는 보행자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보행성과 대중교통 연계성을 강화한 것이다. 환경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건축물 사이로 빛과 바람이 통하도록 획지계획을 마련한다. 한강 변으로 열린 녹지체계를 구축하고, 지상층 중심의 열린 공간을 넉넉히 확보한다.
서울시는 교통 영향·재해영향평가 등 관련 사전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구역·개발계획 변경 및 실시계획 인가, 고시할 예정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산 정비창 부지는 이미 개발계획이 수립된 상황"이라면서 "서울의 경우 오피스가 부족한 상황인데 주요 업무지구와 가깝고 교통이 좋은 용산에 업무지구 대신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주택이 부족하다는 논리로만 본다면 용산 뿐만 아니라 강동구에 있는 올림픽공원,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공원 등 집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모두 활용해 집을 지으면 그만이지 않겠느냐"며 "예컨대 뉴욕 집값이 비싸다고 센트럴파크를 밀고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도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미군 반환 기지에 주택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당 부지에 오염물질이 많아 이를 정화하는 데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주택을 공급하기엔 부적절하단 의미"라고 설명했다.
환경단체에서도 용산기지에 집을 짓는 것을 반대한다. 녹지는 온실가스와 탄소를 흡수해 도시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집이 들어서는 주변으로 작은 공원, 산책로 등이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