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美-中 AI 패권 전쟁 균열 낼 수도"

입력 2025-10-13 17:37
수정 2025-10-14 01:43
중동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선을 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석유 이후의 성장 엔진을 AI 인프라에서 찾고 있다.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클라우드와 전력 인프라에 수천억달러 규모 투자가 몰리면서 중동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기술 질서에 균열을 내는 ‘제3의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데이터센터 서비스 기업 TRG가 2025년 전 세계 AI 인프라 분포를 분석한 결과, 미국이 엔비디아 H100급 AI 칩 3970만 개 수준에 해당하는 연산 능력으로 1위를 차지했다. UAE(2310만 개 수준)와 사우디(720만 개 수준)가 각각 2위, 3위를 기록했다. 전력 용량 기준으로도 UAE는 6400메가와트(㎿), 사우디는 2400㎿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가동 중이다. 이는 중국(40만 개 수준·289㎿)을 크게 앞서는 수준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보다도 10배 이상 많다. 각국이 데이터와 알고리즘, 연산 자원을 자국 내에 확보하려는 ‘AI 주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중동이 미·중 양강 구도를 흔들 ‘제3의 AI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걸프 산유국들이 에너지 의존형 경제에서 AI 기반 지식경제로의 전환에 수천억달러 규모의 베팅을 단행한 결과다. 사우디는 지난해 4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 AI 전용 펀드를 조성해 반도체·데이터센터·AI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부펀드(PIF) 산하 AI 기업 휴메인(HUMAIN)은 미국 퀄컴과 손잡고 첨단 AI 데이터센터를 공동 구축하고 있다. 구글클라우드 역시 PIF와 손잡고 100억달러 규모 글로벌 AI 허브를 사우디에 설립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UAE는 2017년 세계 최초로 AI 장관직을 신설하고 ‘국가 AI 전략 2031’을 출범시켰다. 정부 산하 AI 기업 G42는 오픈AI, 엔비디아와 협력해 초대형 데이터센터 단지를 세우는 ‘스타게이트 UA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기가와트(GW)급 클러스터에서 출발해 5GW 규모로 확장될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단지다.

중동식 ‘AI 드라이브’는 에너지 의존형 경제에서 AI 기반 지식경제로 전환하려는 국가 전략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마르 술탄 알올라마 UAE 인공지능·디지털경제부 장관은 13일 행사에서 “AI는 단순 산업 기술에 머물지 않고 국가 인프라의 핵심이 되고 있다”며 “UAE는 에너지 이후의 성장 모델을 AI를 통해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바이=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