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창업 축제 '플라이 아시아'…부산, 스타트업 새 기지로

입력 2025-10-13 15:47
수정 2025-10-13 15:48

수도권에 집중된 국내 창업 생태계에 맞서 부산이 새로운 창업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시는 대규모 벤처펀드를 조성하고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 제조혁신과 창업 전담 투자기관을 앞세우며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부산에서도 유니콘 나올 수 있어”부산시는 창업 환경 조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4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창투원)’을 출범시켰다. 창투원은 플라이 아시아(Fly Asia)를 주관하며 지역 창업 생태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서종군 초대 원장은 “관 주도로 시장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민간 자본이 들어오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목표”라며 “부산에서도 반드시 유니콘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임 5개월 만에 성과도 나타났다. 수도권 벤처캐피털 비전에쿼티파트너스 본사의 부산 이전을 이끌었고, 지역 내 VC는 2021년 11개에서 올해 19개로 증가했고, 액셀러레이터는 15개에서 28개로 늘었다. 서 원장은 “2030년까지 기술창업 비율을 현 5.2%에서 6.4%로, 전국 벤처투자 비중은 2.8%에서 4.9%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부산 내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한데 청년들이 창업에 도전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물음에는 “3~50명 규모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고 이후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제조업·물류 같은 전통 산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AI·핀테크 등 지식 산업으로 피벗해야 한다”며 부산 창업 생태계의 미래 전략을 설명했다.◇LP 부족하던 부산, 연기금 품으며 기대부산시는 아시아 창업 엑스포 ‘플라이 아시아 2025’도 최근 열었다. 이 행사는 ‘로컬에서 혁신, 글로벌에서 스케일업’을 주제로 국내외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교류하는 장으로 마련됐다. 40개국 2만여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현장 투자상담은 1000여건에 달했다.

개막 첫날에는 4000억원 규모의 미래성장벤처펀드 1호 투자를 기념하는 ‘부기테크’ 행사가 열렸다. 성희엽 부산시 미래혁신부시장은 “지역 스타트업이 가장 목말라 하는 숙제가 바로 투자 연계”라며 “부산시가 자체적으로 만든 펀드가 해법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라이 아시아에선 투자사와 스타트업, 그리고 유동성공급자(LP)를 연결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이대희 한국벤처투자 대표 등 국내외 신규 대형 기관투자자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의 ‘LP-벤처캐피털(VC) 포럼’을 열었다. 싱가포르 LP 2곳도 함께하며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산시는 벤처펀드 조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1조7000억원 규모의 모(母)펀드를 출범시켰고, 이를 통해 70개의 자(子)펀드를 운용 중이다. 또 ‘미래성장벤처펀드’를 통해 향후 3~4년간 1000억원 이상을 지역 기업에 투자하고, 2030년까지 2조원 규모의 투자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AI 저력 알린 부산 기업들행사장 곳곳에선 지역 제조업 한계를 AI로 극복하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부산의 전통산업군인 신발과 AI를 결합한 크리스틴컴퍼니의 ‘신플’ 플랫폼은 전국 신발 공정 데이터를 집약해 공장별 성향을 분석하고, AI가 10여개 공정을 자동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디자인 개발까지 지원해 신발 기획~제조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 부산은 신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밀집돼 있는데, AI가 접목되면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벤처기업부 ‘아기유니콘’으로 선정된 그릿지는 ‘개발자 구독’ 모델을 내세워 부산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전국의 개발자를 역량·업무 특성에 따라 온라인에서 팀으로 묶어 기업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맞춤형 인재를 확보할 수 있고, 개발자는 프로젝트 단위로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된다.

부기테크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된 삼정개발과 에이엘로봇도 주목받았다. 삼정개발은 부산 사하구에 신규 공장을 준공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폐산·불산 폐액까지 재활용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로봇용 토크센서를 개발하는 에이엘로봇은 화낙·두산로보틱스 등 글로벌 고객사에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두 기업 모두 투자 유치에 그치지 않고 상장, LP 참여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개막식 무대에는 지난 7월 세계 최대 로봇 대회 ‘로보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로봇 ‘아누비스’가 등장해 주목받았다. 이승준 부산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아누비스는 접시를 깨지 않고 옮길 정도의 정교함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날 “펀드와 공간 중심의 창업 인프라를 넘어 투자사와 LP 네트워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며 “지역색을 버리고 글로벌 무대로 도약하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최영총/민건태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