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입지 전쟁…폐광·해저 넘어 우주까지 확장

입력 2025-10-13 15:56
수정 2025-10-13 15:57
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은 데이터센터 산업을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챗GPT 같은 초거대 모델이 확산하면서 한 번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만 수천 가구의 연간 전력량이 소모될 정도로 서버 자원이 필요해졌다. 이에 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입지를 지상에서 바다, 우주까지 확장하고 있다. ◇ 폐광 활용하면 운영비 ‘반값’ 데이터센터 후보지로 가장 주목받는 곳은 폐광이다. 13일 글로벌에너지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년간(2015~2024년) 문을 닫은 광산은 1485개에 달한다. 주요 광산은 수십 년간 채굴이 이어진 끝에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폐쇄됐다. 최근에는 탄소중립 흐름에 따라 조기 폐광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도 300개 이상의 폐광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방치된 광산은 넓은 지하 공간과 일정한 온도, 두꺼운 암반을 갖춰 냉각 효율과 보안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 입지로 제격이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노르웨이의 레프달 광산 데이터센터다. 폐광을 개조한 이 센터는 12만㎡의 넓은 공간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근 해수를 끌어와 서버 냉각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소모전력의 98.5%를 수력발전으로 얻기 때문에 운용 비용은 다른 데이터센터 대비 절반 수준이다.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블루버드 데이터센터와 캔자스주에 있는 라이트에지 데이터센터도 폐광을 활용해 건설했다. 이들은 지하 20~30m에 있어 연중 18~20도의 서늘한 온도가 상시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 데이터센터의 서버실 권장 온도는 약 18~23도인데 지하에서는 이보다 낮은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냉각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한국에서도 강원 태백, 전남 장성 등에서 폐광을 데이터센터 부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지하 광산에서는 자연적으로 전자기 및 물리적 차폐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안보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휴전국가인 한국은 금융 데이터센터 같은 핵심 인프라가 전쟁 상황에서 전략적 타깃이 될 수 있어 폐광 데이터센터가 보안 리스크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은혜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주요 데이터센터는 국가 핵심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폐광 데이터센터는 폐광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국가 기반 시설을 지킬 수 있는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상 대비 서버 고장 적어
폐광뿐 아니라 세계 정보기술(IT)업계는 극한 환경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전력·냉각·안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2022년 460TWh에서 2030년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한국 전체 연간 전력 소비량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단순한 효율 개선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로 자연 조건을 위한 대체 입지를 찾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내틱 프로젝트를 통해 해저 데이터센터 실험을 하며 여러 성과를 냈다. 해저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바닷물로 냉각해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서버 고장률도 육상 데이터센터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육상에 설치한 서버 135대 중 8대가 고장(5.9%) 난 데 비해 해저에서는 885대 중 6대(0.7%)만 고장 났다. 사람의 출입이나 공기·습도 변화에 의한 영향이 거의 없고 연중 일정한 저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2023년 해양기술 기업 하이랜더가 하이난 해안에 세계 최초로 해저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400대 이상의 고성능 서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하이랜더 측은 100개 이상의 모듈을 해저에 배치해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 차폐 및 냉각기술 등 한계 보완해야데이터센터의 입지 논의는 지구를 넘어 우주로도 확장되고 있다. 지난 8월 구글은 협력 중인 스타트업 스타클라우드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위성을 곧 발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이 자원을 활용해 AI ‘제미나이’를 시험 가동할 예정이다.

미국 우주 데이터센터 개발 스타트업 액시엄스페이스도 IBM·레드햇과 협력해 소형 데이터센터 모듈 ‘AxDCU-1’을 8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냈다. 우주 환경에서 데이터 처리와 AI 연산이 가능한지 검증하기 위해서다.

중국도 올해부터 ‘삼체 컴퓨팅 위성군’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천 기의 소형 위성에 슈퍼컴퓨터급 AI 연산 장치를 탑재해 궤도상에서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일부 위성이 시험 발사돼 궤도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지상 데이터센터 의존도를 줄이고 우주 클라우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극저온인 우주에서는 냉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지상과 달리 토지와 전력망 제약이 없어 무제한 확장이 가능하다. 저궤도 위성과 연동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저지연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크다. 발사 비용은 여전히 높고 우주방사선 차폐와 냉각 기술 등의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제이슨 아스피오티스 액시엄스페이스 우주 데이터 및 보안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우주 데이터센터가 현실화되면 지연이 거의 없고 보안성을 높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