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노인과 바다’라는 별칭으로 불린 지 벌써 수년째다. 지방 소멸 시대를 맞은 부산의 현주소가 이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역 경기가 활력을 잃으면서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들은 해마다 수도권 등으로 떠나고 있다. 부산시 인구는 2020년 352만 명에서 지난해 333만 명으로 4년 새 20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15~39세 인구 비율은 27.4%로 광역시 중 가장 낮다. 경기 침체로 자영업 폐업이 늘어 상권도 크게 위축됐다.
부산의 경제 주체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박형준 부산시장과 40년간 뿌리산업에 몸담은 박평재 경일금속 대표(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전복죽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애영 기장끝집 사장이 한가위를 앞둔 이달 초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 앞바다가 펼쳐진 언덕에 자리 잡은 정 사장의 음식점에서다. ◇불황으로 자영업자 감소
박 시장은 부산의 자영업자 위기가 구조적 문제에 따른 것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자영업 비중이 15%를 넘으면 과잉이라고 봐야 합니다. 부산은 이보다 훨씬 높아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지금은 구조 전환이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부산시에 따르면 2021년 박 시장 취임 당시 자영업자 비중은 22.3%(37만 명)에 달했다가 올 7월 16.7%(28만5000명)로 떨어졌다. 온라인 상거래 확산으로 서면, 남포동 등 원도심의 전통 상권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 사장이 커다란 소쿠리에 해산물 밑반찬을 곁들인 전복죽 상차림을 내오며 박 시장의 말을 거들었다.
“코로나19 때부터 온라인 플랫폼과 라이브 방송을 통해 밀키트 판매에 나서 도움이 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주변의 자영업자들을 만나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에요.”
박 대표도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면서 음식점을 찾는 발길이 확연히 줄어든 것 같다”고 공감했다. 그는 “표면처리업체의 폐수 처리량이 작년 대비 25% 줄었다”고 했다. 그만큼 공장 가동률이 낮아졌다는 것. 박 대표는 녹산국가산업단지에서 표면처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식을 방지하고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표면처리는 자동차, 전자 부품은 물론 온갖 생필품의 장식품 등이 반드시 거치는 공정이어서 경기 동향의 풍향계로 꼽힌다. ◇수도권으로 청년층 대거 이탈지역 경기의 어려움을 둘러싸고 오가던 대화는 자연스레 부산의 청년 이탈 문제로 이어졌다. 청년 인구 감소가 지방 소멸의 원인이라는 평가에 대해 박 시장은 “그건 결과일 뿐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 경제 구조를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수도권 일극 체제’가 근본 원인이라는 얘기였다.
“부산에 있던 대기업 본사도 모두 서울로 옮겨간 지 오랩니다. 서울 쏠림 현상이 지나쳐 청년들이 앞다퉈 상경하고 있죠.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 증가분의 78%가 지역 청년이 올라간 것으로 나와요. 그러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져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청년의 행복도와 출산율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 대표도 “청년들이 서울로 올라가다 보니 중소기업은 청년을 채용하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구해도 지역 활성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시장은 “한국에서 번 돈을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하기 때문에 소상공인의 형편이 나아지기 어렵다”며 “최저임금을 아무리 인상해봐야 소비를 진작하지 못하고 국부만 유출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내국인과 똑같이 주고 대체공휴일까지 수당을 지급해야 하니 중소기업을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두바이·싱가포르식으로 성장해야”내수를 다시 살리기 위해 박 시장은 부산을 그리스 피레우스와 같은 글로벌 해양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부산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최상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부산은 세계 2위 환적항입니다. 앞으로 북극 항로까지 열리면 부산과 같은 최적지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이런 입지의 강점을 살리려면 24시간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관문 공항을 조성해야 합니다. 가덕도 공항이 필요한 이유죠.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도 다 이런 식으로 성장한 것 아닙니까?”
해양 허브와 관련한 얘기가 시작되자 박 시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부산을 중심으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전남 여수·광양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남부권 경제벨트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서서 ‘해양수도’라는 새로운 경제권이 탄생하는 거죠. 수도권 과밀 집중에 의한 경제 성장은 이제 한계효용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받쳐줄 새로운 경제권이 꼭 필요합니다.”
박 시장은 특히 부산이 피레우스보다 입지 여건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부울경은 조선·원전·철강·방위산업이 포진해 있어 해운·수산·에너지·방위산업을 아우르는 해양산업의 슈퍼클러스터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역할을 수행하려면 국제 소송 등을 전담할 ‘해사 전문법원’이 부산에 들어서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해외 투자자 유치를 위해 산업은행도 서둘러 내려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산은 원전 덕에 전기 자주율이 213%에 이르는 만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들어올 최적지라고도 덧붙였다. ◇“관광객 통해 경기 활성화”정 사장은 “자영업자가 좀 더 활력을 찾도록 관광산업을 활성화해달라”고 주문했다. 박 시장은 “해외 관광객이 8명 오면 정주 인구 1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며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페스티벌을 통해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는 게 주요 시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박 대표와 정 사장은 “정부의 노동 규제가 부담스럽다”며 부산시 차원에서라도 해법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표는 “대기업이나 감당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 주휴수당 등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제조업을 계속 끌고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정 사장도 “중대재해법 때문에 이런 가게에서도 직원이 미끄러지거나 하면 저도 처벌받는다고 하는데 장사하면서 너무 큰 부담을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박 시장은 “이런 규제가 결국 비용 증가로 이어져 물가를 올리고 그러면 또 장사가 안되는 악순환을 낳아 걱정”이라며 “시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부산=이정선 중기선임/민건태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