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 위기 빠졌던 CATL 유럽 공장, 시진핑이 되살렸다

입력 2025-10-12 17:14
수정 2025-10-13 01:17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이 헝가리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것은 2022년 말이었다. 중국 내수시장을 넘어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유럽 시장부터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시장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미국 시장이 막힌 터여서 CATL에 유럽은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유럽의 반중(反中) 정서는 생각보다 강했다. 2023년 헝가리 데브레첸에 첫 삽을 뜨기 전부터 현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자본이 헝가리를 집어삼킨다”는 반발에 환경 오염 가능성까지 불거져 공장 건설은 좌초 위기에 빠졌다. 현지 법원이 CATL 공장의 안전관리 허가를 무효화하자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절망에 빠진 CATL의 구세주는 중국 정부였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비밀리에 헝가리 정·재계 인사를 만나 차관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와 에너지 인프라 제공을 약속하며 분위기를 돌려세웠고, CATL은 정부 지원금 등을 활용해 지역사회에 돈을 뿌리며 주민들을 달랬다. 그렇게 공장 건설은 재개됐고,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CATL 사례를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해외 영토를 넓혀나가는 중국식 개척 모델의 전형으로 꼽는다.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가대표가 되는 순간 ‘세계 챔피언’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정부가 힘껏 밀어주는 게 이 모델의 요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CATL이 막대한 투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이중 상장도 허용했다. 이 덕분에 선전 증시에 상장한 CATL은 지난 5월 홍콩 증시에도 이름을 올리며 헝가리 공장 투자금 11조원 중 6조원을 마련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배터리,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은 해외 자본이 지분을 갖는 걸 막기 위해 이중 상장을 허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트렌드”라며 “하지만 중국 정부는 CATL의 글로벌 생산거점 구축 작업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보고 파격적인 혜택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자국 배터리 기업을 생각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 도로, 댐, 철도를 깔아주는 대가로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 채굴권을 확보한 뒤 자국 배터리 업체에 권한을 넘겼다. 코발트는 세계 최대 매장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생산량 중 70%를 중국 기업이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