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반도체산업을 키우는 핵심 경쟁력은 이공계 열풍이다. 한 해 대입 수험생이 116만 명에 달하는 베트남에서는 전기전자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가 최고 인기다. 1990년대 메모리 반도체로 세계시장을 뚫은 한국이나 최근 무서운 속도로 기존 반도체 강국을 뒤쫓고 있는 중국과 비슷하다.
9일 베트남 관영 매체 VN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대학입시에서 이공계 학과 중 가장 합격 점수가 높은 곳은 하노이과학기술대(HUST)의 컴퓨터과학 계열이었다. 30점 만점인 베트남 국가수능(THPT) 기준으로 합격선이 28.53점이었다. 데이터과학·인공지능(AI) 학과 등의 커트라인도 28점대를 기록했다. HUST뿐만 아니라 하노이대, 호찌민대, 호찌민공대(HCMUT) 등의 컴퓨터과학 계열이나 AI 관련 학과에 입학하려면 27점 이상의 성적이 필요했다. 전기전자와 기계·재료공학과 등의 합격선도 26~27점이었다. 여전히 인기인 의대보다 높은 점수다. 같은 해 베트남 의대 합격 점수는 25~26점이었다. 하노이 의대(28.27점)와 호찌민 의대(27.8점)만 일류 대학 공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베트남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가 아니라 AI와 반도체 관련 학과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 회사 연구원 연봉이 의사 연봉보다 많기 때문이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의 취업자는 5190만 명이었다. 월평균 소득은 302달러(약 42만원) 수준이다. 의대를 졸업해도 공립 병원에선 일반 대졸자와 큰 차이가 없는 5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전문의를 취득해야 월급이 200만원대로 올라간다.
이에 비해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신입 연구원에게 100만원 이상의 초봉을 주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임금 상승 속도는 빨라진다. 10년 차 이상 리더·수석급이 되면 월급이 300만~400만원대로 올라간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트남 상위 1%가 거주하는 서호, 시푸트라 등 하노이 인기 주거지의 7억~8억원대(84㎡ 기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