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건축 유산은 지금도 미래를 이야기 한다. 빈의 중심부에 화려한 웅장한 건축물들에 조금 피로해졌다면, 링 슈트라세 밖으로 눈을 돌려보는 게 좋다. 과거의 것들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일찌감치 깨달은 건축가들의 혁신을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현대건축의 거장 ‘한스 홀라인’
“모든 것은 건축이다”는 말을 남긴 한스 홀라인(1934-2014)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중 유일하게 프리츠커상을 받은 인물이다.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등 유럽과 미국 곳곳에 족적을 남긴 그는 고향인 빈에 명작들을 남겼다. 성 슈테판 대성당 앞, 고전적인 중세 건물들 사이에 대리석과 통유리로 지은 랜드마크 건물 ‘하스 하우스(Haas Haus)’가 대표적이다. 성당이 반사되는 모습이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비친다.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내부엔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자리해 쇼핑을 하거나 빈 시내 전망을 즐기기에도 좋다.
2001년부터 3년간 현대미술관인 ‘알베르티나’의 증축을 담당한 그는 공중에 길게 뻗은 구조물이 돋보이는 ‘소라비아 윙’도 설계했다. 빈의 힐튼 호텔, 도나우카날 지역의 사무실 건물도 그의 작품이다.
“자연엔 직선이 없다” 훈데르트바서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현대예술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 역시 빈 건축 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0년대부터 ‘도심에 나무를 심자’는 슬로건을 내걸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철학으로 유기적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빈 슈피텔라우역에 있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강렬한 색과 둥근 돔, 불규칙한 형태로 친환경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 것만 같은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 내부가 궁금하다면 ‘쿤스트하우스 빈’으로 향해보자.
미술관과 문화공간으로 쓰이는 이곳엔 그의 회화의 그래픽의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영 집합주택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미술관에서 가깝다. 구불구불한 선, 나무와 넝쿨로 뒤덮힌 건물. 오스트리아 문화유산이기도한 이곳엔 52채의 아파트가 있고, 사무 공간이 4곳이다. 200여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공용 테라스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모더니즘의 꿈이 화려하게 펼쳐졌던 빈에서, 그 모더니즘에 또다시 저항했던 예술가의 업적인 눈앞에 펼쳐진다.
자하 하디드의 역작…7개 첨단 건축 모인 캠퍼스
빈 경제경영대학교 캠퍼스는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이 공모전을 거쳐 총 7개의 건물을 완공했다. 약 10년 전 일이다. 5만5000㎡(약 1만6630평)에 달하는 부지에 4000개 이상의 학습과 업무 공간이 들어서 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처, 아베 히토시 스튜디오, CRAB스튜디오 등 유명 건축 사무소들이 설계를 주관했는데, 각각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캠퍼스 주변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놀이공원이자 빈의 랜드마크인 프라터 공원에 있어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도심과는 전혀 다른 첨단 건축물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
그 중 가장 강렬한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 건물은 도서관이다. 자하 하디드(1950-2016)와 패트릭 슈마허가 설계하고 2012년 완공됐다. 외관부터 경사면이 아찔한 매스가 공중에 뜬 채 돌출돼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협곡’을 주제로 한 인테리어에 또 한번 놀란다. 유려한 곡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내외부는 물론 층별 흐름이 끊이지 않는 연속적인 동선이 경이롭다. 대학에선 2시간짜리 건축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빈=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