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넘어 ‘적정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간 찬반 논란에 도입이 무산됐던 건설업 적정임금제 도입을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건설업계는 적정임금제가 본격화하면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공사비 상승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건설근로자 적정임금제 제도화를 위한 연구 용역에 나섰다. 공공부문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한 뒤 적정임금제 틀을 구체화해 확대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가격 경쟁에 따른 건설근로자 실질임금 하락으로 청년층 유입 및 내국 숙련 인력 감소 등 건설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며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최저가 낙찰 방식의 입찰 관행과 재하도급 방식의 건설 구조가 근로자 임금 하락을 야기했다는 설명이다.
적정임금제는 2017년 도입 방향이 발표돼 2021년 구체적 방안이 나왔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시범사업 당시 공사당 고용이 78.7명 증가했다. 또 기능직 근로자 임금은 2만5000원, 일반근로자는 3000원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에도 공사비 상승에 따른 사업성 악화가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방안을 우선 마련하고 제도 도입에 따른 성과를 다시 측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무비 상승분 반영을 위한 공공 계약제도 개편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
정부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하고 있지만, 적정임금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업계에서는 벌써 공사비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적정임금을 사전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공사비 추가 상승분을 건설사가 부담해야 하거나 공사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가뜩이나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 인상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근로자의 처우 개선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적정임금제 도입이 건설 안전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은 검증이 필요하다”며 “적정 공사비조차 확보가 안 되는 사업장이 다수인 현실에서 사업주와 근로자 중간에 놓인 건설사의 비용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최저가 낙찰 방식의 조달 제도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적정임금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며 “공공에서 부작용이 드러나면 민간에선 도입을 더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