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절반의 성공...거버넌스 혁신이 필요하다

입력 2025-11-03 09:12
수정 2025-12-05 09:02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거버넌스 혁신과 밸류업 2.0 ①

최근 글로벌 OTT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누적 시청률 1위를 달성하며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의 개별적 성공만이 회자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가 목도한 K-팝, K-드라마를 비롯한 K-방산, K-푸드, K-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는 대한민국이 보유한 독창적이고 문화적인 우수성과 지식 기반의 산업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이니셜 K는 유독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K-디스카운트(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명으로 불리며 기업 주가가 내재가치 대비 낮게 형성되고,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동일 업종 기업보다 할인 거래되는 고착화 현상의 대명사가 되었다. 국내 상장기업의 저평가로 기업은 높은 자본조달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국민은 연금자산의 가치 하락과 부동산 등 대체 투자자산의 과열로 악순환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거래소는 2024년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전략을 공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025년 5월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9%가 공시를 완료했으나 상장사 개수 기준으로는 여전히 5% 미만의 기업만 참여해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역시 우리보다 먼저 밸류업 공시 제도를 도입했지만, 첫해 이후 점차 참여 기업이 늘어난 전례가 있다. 이제는 우리 자본시장도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지속가능한 밸류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자본시장 회복, 소통 통한 신뢰 회복이 첫걸음

K-컬처의 성공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분명한 점은 할리우드식 문법이나 미국 팝 음악 시장의 방식을 모방하지 않았으며, 한국 고유의 문화적 가치가 해외시장에서 통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의 콘텐츠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소통 전략이 뒤따랐기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했다.

우리 자본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기업이 아무리 경쟁력 있는 사업 전망과 주주환원 계획을 갖춰도 시장과 소통하지 못한 그 가치는 평가받지 못한다. 사업보고서 등 기존 공시는 규정에 따라 과거 실적을 보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미래 현금흐름과 성장성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투자자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되지 못한다.

결국 밸류업 공시의 핵심은 단순한 형식적 보고가 아니라 기업의 미래 전략과 비전을 시장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시장과 투자자들이 기업의 성장 스토리에 공감하고, 궁극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2025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백서〉를 발간하며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국내외 기관투자자 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밸류업 프로그램이 도입된 후 주주와의 소통이 개선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고, 이는 향후 상장기업의 투자 유치 확대와 주가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만약 국내외 투자자들이 잠재 성장 기업의 전략과 미래 현금흐름 전망을 밸류업 공시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는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이 노력한다면 밸류업 공시는 단순한 규제 준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시장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고,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소통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단기적 성과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기준 밸류업 공시를 완료한 기업은 미공시 기업 대비 주가 상승률이 높고, 시장 전반의 하방 압력에도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한 일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일본 기업 또한 공시 이후 시장의 재평가를 받으며 주가가 개선되고, 기업가치 제고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은 무엇을 알고 싶을까

그렇다면 기업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내용을 담아 시장과 소통해야 할까? 일반 공시는 공시 규정과 회계 기준에 따라 정해진 항목을 충실히 기재하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밸류업 공시는 기업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작성한다.

그러나 그 자율성 뒤에 숨어 기업에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공개하거나 기업가치 제고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형식적인 내용만을 나열한다면, 시장은 이를 곧바로 간파하고 외면할 것이다.



밸류업 공시는 궁극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인 만큼 그 원인에 대한 구체적 답을 담아야 한다. 그 핵심은 주주환원 확대, 지배구조 개선, 미래 성장성과 수익성 등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다.

각각의 과제에 대한 해답은 기업 입장에서 쉽게 도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밸류업 공시의 진정한 목적은 시장과 주주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고, 저평가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 스스로 경영 의사결정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자연스럽게 시장친화적·주주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실질적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밸류업 공시는 단기적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이행해야 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하나씩 해소하는 로드맵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각 기업은 다음 사항을 공시 계획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① 우리 기업은 잘하고 있나?: COE & ROE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의 공식 명칭은 ‘자본비용과 주가를 고려한 경영(Management conscious of cost of capital and stock price)’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업이 자본비용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경영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자본비용 개념이 생소했지만, 이는 결국 주주들이 기대하는 요구 수익률을 뜻한다.

금융기관의 차입금 같은 타인 자본에는 이자비용이라는 명확한 자본 사용료가 존재하며, 기한이익 상실이나 부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이를 철저히 관리한다. 반면, 자기자본에 대해서는 배당 의무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기에 기업들이 그 자본이 요구하는 수익률을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기업이 밸류업 활동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우선 ROE(자기자본이익률)와 COE(자본비용)의 비교를 통해 현재 자본효율성을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ROE는 통상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당기순이익에 반영되고, 자본배치와 주주환원 정책이 자기자본 규모에 반영된다. 이 지표를 통해 기업은 현재 수익률이 주주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충족하는지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으며, 미흡하다면 배당 정책, 자사주 매입·소각, 비효율 사업 정리 등 구체적 개선 계획을 마련할 수 있다.

② 주주환원은 적정하고 설명 가능한가?: 배분과 재투자의 균형
거래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듯,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 중 하나는 미흡한 주주환원이었다. 실제로 주요 기업의 밸류업 공시에서도 과거 대비 개선된 주주환원 계획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는 총주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분명히 긍정적 요소다.

그러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을 고려할 때 단기적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이익을 나누는 것뿐 아니라 투자를 통해 미래의 과실을 더욱 크게 만드는 전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누적 총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상장한 이후 일정 기간 동안 현금 배당보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결정의 배경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을 경우, 주주와 기업 간 불필요한 불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수 공시 사례를 보면, 다수의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 유입액을 재투자와 주주환원에 어떻게 배분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주주에게 일시적 현금 제공이 아닌, 장기적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이루게 한다.

③ 미래 먹거리는 충분한가?: 중장기 사업 계획에 따른 전망

과거 국내 기업들은 보수적 경영환경 속에서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내부정보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효율화가 진전될수록 오히려 기업이 미래 전망과 전략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투명성 제고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자본조달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므로, 자본효율성 제고라는 관점에서 기업 전체의 ROE를 저해하는 사업은 정리하거나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핵심 사업과 비핵심 사업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사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중장기적 로드맵을 시장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많은 기업이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잠재적 리스크를 최대한 식별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와 가정 아래 방향성과 핵심성과지표(KPI) 중심의 계획을 수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획은 가변적’이라는 전제하에 이행 평가 등을 통한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것이 필수다.

④ 상장기업다운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가?: 투명하고 전문적 지배구조

자본효율성 제고, 주주환원 확대, 미래 사업의 성장성과 수익성 확보가 아무리 중요해도 이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025년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특정 대주주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총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재편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공시)에 명확히 담아야 하며, 형식적 선언을 넘어 실질적 실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다수의 상장기업이 주요 경영진의 KPI와 인센티브 체계를 주가 또는 기업가치 제고의 핵심 지표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러한 변화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과 시장 신뢰 회복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자본시장의 변화

최근 이루어지는 상법개정 등 제도적 변화는 겉보기에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요구를 반영한 흐름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빠른 의사결정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 경영진에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자본시장은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할 것을 요구하며,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시장 신뢰 회복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밸류업 공시 등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함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며, 주주와의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전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일상 삼정 KPMG 밸류업지원센터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