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약 2000세대 아파트 단지 1층을 계약하려던 신혼부부 A·B씨는 지난달 29일 아파트를 계약하려다 낭패를 봤다. 맞벌이인 그들은 집 계약을 하기 위해 회사에 연차까지 사용하며 집 내부를 살펴봤고, 문밖을 나선 직후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가계약금을 넣겠다고 계약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집주인이 갑자기 “50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돈을 더 요구하면서 계좌번호 제공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놀란 A·B씨는 “2000만원을 더 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집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면된다”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결국 계약이 불발됐다. 중개사 C씨는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5000만원 더 비싼 가격에 매물을 시장에 내놨어야 했다”며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지금의 시장에선 집주인이 ‘갑’, 매수자는 ‘을’이다”고 꼬집었다.“2018년 ‘부동산 폭등’ 초입과 유사”정부가 9·7 대책 발표 후 약 한 달간 서울 주요 아파트의 값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시장에선 ‘정부가 당분간 신규 아파트를 공급할 의지가 없다’고 받아들이면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형성된 것이다. 매물이 사라진 ‘공급 가뭄’ 현상이 지속되면서 집 구입이 필요한 예비 신혼부부나 만기를 앞둔 전세 세입자 등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약 30년간 부동산 중개를 해온 D씨는 최근 시장의 흐름을 “문재인 정부였던 2018년 집값이 폭등했을 초창기 시기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동작구의 주요 아파트들은 집주인이 매물을 내놓은 직후 집을 살펴보지도 않고 가계약금을 넣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해 졌다고 한다.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시장에 의사를 밝히자마자 매수자들이 몰려든다. 문밖에서 줄지어 집을 구경하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정책으로 ‘성동구·마포구는 물론 동작구까지 추가 규제할 수 있다’란 인식이 퍼져나가면서 동작구까지 ‘패닉 바잉’ 현상(부동산 가격 상승을 우려하며 급하게 주택을 매입)이 벌어지게 됐다. 덕분에 동작구 주요 아파트들은 20평형대 기준 지난 6개월 동안 아파트 값이 2억~4억원씩 올랐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도 비상에 걸렸다. 내년 3월에 결혼을 준비하는 E씨는 “매매·전세가가 한꺼번에 상승했고 매물까지 없어 신혼집을 어디에 구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집 없이 신혼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집을 구입해야하는 매수자들은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는데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세 만기가 다가 온 신혼부부 A·B씨는 “소비쿠폰 등 시중에 돈을 많이 풀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고스란히 집 값에 반영되는 것을 체감한다”며 “시장만 자극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으며 결국 뒷짐지고 관망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매물가뭄에…계층·지역 간 이동도 ‘단절’‘불장의 핵심’으로 지목된 성동구의 경우 약 10개월 사이 약 5억원(20평형대 기준) 가량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행당동의 약 1000세대 아파트 단지의 경우 20평형대가 11억원 선이던 것이 지난달 15억원 이상 거래됐다. 현재 약 16억원 정도에 매물이 나와있는 등 열기가 뜨겁다.
성동구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바로 맞닿아있는 중구와 동대문구까지 ‘불이 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성북구·중랑구 등까지 충격이 연쇄적으로 밀려드는 모양새다. 성북구 길음동의 ‘대장아파트’ 격인 2300여세대 단지의 경우 2023년 20평형대 기준 매물이 9억원선에 거래 됐지만 현재 12억원선에 매물이 거래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약 800세대 아파트 단지에서 20평형대 집을 가진 30대 F씨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약 7년 차 신규 아파트를 5년 전 샀던 그는 현재의 집을 팔고 성동구 쪽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는 ‘갈아타기’ 계획을 세웠지만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내 집값이 오른 만큼, 다른 동네의 집값이 더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아파트를 샀을 당시보다 약 4억원 정도 시세 차익을 봤고 현재의 집을 적당한 가격에 팔고 나갈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사를 가고 싶어하는 동네의 집 주인들이 “1억원 이상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F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동대문구의 집 값을 함께 올릴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F씨는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다”며 “집을 갈아타려는 주택자도 발목이 묶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