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핵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장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세대 HBM용 장비 연구개발에 이어 최근 반도체 패키징 본딩 장비 전문가 채용에 직접 나서며 사업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한미반도체가 독점하고 있는 이 시장에 한화세미텍에 이어 LG전자까지 등판하면서 차세대 HBM 장비 패권을 둘러싼 3파전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 내재화로 경쟁력↑ 5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생산 기술원 내에서 HBM용 본딩 구조와 공정 프로세스의 이해를 기반으로 핵심 공법 및 장비를 개발할 전문가 채용을 진행 중이다. 담당 직무는 △본딩장비 핵심 부품 개발 및 구조 설계 △반도체 장비용 ‘열관리 솔루션’ 설계 △고속·정밀 모션 제어 △정밀 알고리즘 개발 등이다. LG전자는 지난 6월부터 HBM용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 국책 과제를 진행해왔다. 이번 채용은 고속 및 정밀 본딩 기술의 내재화를 통해 사업 기반을 다지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HBM에 들어가는 D램을 쌓아 올릴 때 하나로 엮어주는 장비로, 현재 주력인 열압착(TC) 본더보다 업그레이드된 장비다. D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단자(범프)가 필요 없어지는 만큼 HBM을 더욱 얇게 만들 수 있다. 기존 TC본더에 비해 전력 효율, 처리 속도, 배선 밀도도 높일 수 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는 하이브리드 본더를 6세대 HBM(HBM4)에, SK하이닉스는 7세대 제품(HBM4E)에 적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HBM 핵심 장비인 TC 본더 시장은 시장 점유율 90%을 차지하고 있는 한미반도체의 독주 체체나 다름없다. LG전자는 이같은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TC 본더를 건너뛰고 ‘하이브리드 본더’로 직행하는 전략을 택했다. LG전자는 오는 2028년까지 하이브리드 본더의 양산 검증(POC)을 완료하고, 2030년부터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통합솔루션'으로 차별화 LG전자가 이 시장에 적극적인 건 기업간 거래(B2B)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과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읽힌다. 성장이 정체된 TV, 생활가전 등 기업간 소비자(B2C) 사업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성이 높은 B2B 사업 사각화의 일환인 셈이다. 조주완 LG전자 CEO는 자신의 SNS를 통해 "차세대 HBM 생산에 필수적인 전문 기술에 투자해 AI 인프라 지원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시장은 올해 1억 9900만 달러(한화 약 2770억 원)에서 오는 2034년엔 약 7억 1300만 달러(약 993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성이 크다. 연평균성장률(CAGR)은 15% 이상이다.
다만 LG전자가 이 시장 선점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 경쟁도 이미 치열해서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와 하이브리드 본더 공동개발을 진행 중으로, 내년 초 2세대 장비 출시를 예고했다. 한미반도체는 1000억 원을 투자해 전용 공장을 지으며 2027년 말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벳시(BESI), 싱가포르의 ASMPT 등 글로벌 강자들도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반도체 장비 R&D 경험과 반도체 후공정 업체에 본더 공급 이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통합 솔루션 제공 능력도 LG전자만의 차별화된 무기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막대한 열을 식히는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과 생산 라인을 자동화하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두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LG전자는 본딩 장비까지 만들어 공급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