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서 버려지는 감귤들…다 어디갔나 했더니

입력 2025-10-07 20:48
수정 2025-10-08 11:30
감귤 농가가 밀집해 있는 제주 서귀포시 신례리에는 버려지는 감귤로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 양조회사 이름은 시트러스. 감귤류나 밀감 속의 과일을 일컫는 용어를 차용했다.

지난달 24일 찾은 이곳 양조장 건물 정면에는 ‘혼디 酒(주)’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누룩을 쓰지 않고 감귤만 발효시켜 만든 12도짜리 혼디는 시트러스의 간판 제품이다.



시트러스가 이 술의 이름을 혼디라고 지은 건 이유가 있다. 감귤을 주로 생산하는 신례리의 140여 농가가 힘을 보태 시트러스를 설립한 까닭이다. 혼디는 제주 사투리로 ‘함께, 같이’라는 뜻이다.

당시 마을 이장이던 김공률 시트러스 대표는 주민들과 함께 너무 크거나 작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귤을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감귤주를 고안해냈다. 혼디는 2014년 공장을 완공하고 이듬해 나온 시트러스의 첫 작품이다. 김공률 대표는 “시트러스는 농축액이 아닌 100% 제주 감귤 원액으로만 술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혼디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입소문이 나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작은 마을의 이름 없는 양조장에서 빚는 술을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2018년까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트러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금씩 인지도를 넓히며 조금씩 경영을 정상화해 나가다가 2019년에야 첫 흑자로 돌아섰다.

설립 초기에 합류한 이용익 공장장도 시트러스엔 천군만마가 됐다. 이 공장장은 진로에서 연구개발 이사를 지내며 ‘일품진로’를 개발한 주역. 증류식 소주를 희석식 소주에 일부 섞어 출시해 인기를 끌었던 ‘참나무통 맑은 소주’도 그의 작품이다.



시트러스는 이후 50도가 넘는 ‘신례명주’(2016년), 스파클링 와인 계열의 ‘마셔블랑’(2018년), 증류주 취향의 고객을 겨냥한 ‘미샹25’(2020년)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품질도 인정받았다. 2023년 세계 3대 주류품평회로 꼽히는 벨기에 몽드셀렉션에서 신례명주는 금상을, 미샹25는 은상을 거머쥐었다.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감귤 원액만으로 만드는 시트러스의 감귤주는 발효와 여과, 중류 과정을 거친 뒤 오크통 숙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트러스는 연간 활용하는 감귤의 양은 약 63t에 이른다. 양조장 지하 숙성실에 있는 오크통은 120여 개가 넘는다.



감귤로 양조에 성공한 사례가 흔한 건 아니다. 술을 빚는 방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감귤로 술을 만드는 곳은 시트러스를 비롯해 제주에선 2~3개 업체에 불과하다. 이용익 공장장은 “제조 기법이 까다롭고 수익성을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아 국내뿐 아니라 제주에서도 감귤로 술을 빚는 기업이 드물다”고 말했다.

시트러스는 현재 월 2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김 대표는 “시트러스가 일본의 사케나 프랑스의 코냑 못지않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술로 성장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귀포=이정선 중기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