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 총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1300조원을 넘어섰다. 은행에 이어 금융권 최대 규모로 자산이 불어났지만 보험사의 운용 수익률은 국고채 금리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해외 보험사에 비해 채권 중심의 소극적 자산 운용 행태가 수익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53개 보험사의 총자산은 지난 6월 말 1301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 대비 29조원 늘었고 2023년 말과 비교하면 77조원(6.3%) 증가했다. 보험사가 자산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내면 그만큼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
문제는 국내 보험업권의 자산 운용 역량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22개 생보사의 올해 6월 말 운용자산이익률은 3.31%에 그쳤다. 같은 시기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연 2.81%)를 간신히 웃돌았다. 시장금리가 높던 2023년에는 국고채 금리가 보험사 운용자산이익률을 넘어서기도 했다.
자산 대부분을 국고채에 투자하는 것이 고질적인 수익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내 상장 보험사 11곳의 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자산의 60~70%를 채권(대출 포함)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보험사 자산운용 '이중 족쇄'가 발목…"비율규제·킥스 손질 필요"
자회사 주식 총자산 3% 제한…M&A·신사업 진출 가로막아국내 보험사의 운용 성과가 ‘쥐꼬리 수익률’에 그친 것은 자산운용 역량을 떨어뜨리는 경직된 규제 탓이다. 보험업권의 자산운용 비율 규제와 지급여력(K-ICS) 제도를 모두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행 법령은 보험사의 특정 자산 비중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지 못하게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특정 자산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동일한 개인·법인 신용공여를 총자산 3% 이내로 제한하거나 부동산 투자 비중이 총자산의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자회사 발행 주식은 자기자본의 60%, 총자산의 3% 가운데 더 적은 값을 한도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율 규제가 2023년 도입된 K-ICS 제도와 함께 ‘이중 규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가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인수합병(M&A)에 나설 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K-ICS 제도는 주식, 채권, 부동산, 외환 등 자산 집중 위험을 자체 평가하고 있다”며 “K-ICS 제도와 자산운용 비율 규제가 일정 부분 겹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보험사 자산운용 비율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추세다.
국내 보험사의 주식, 대체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선 K-ICS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K-ICS 제도에선 보험사가 정책펀드나 비상장 주식 등에 투자하기 불리한 구조다. 예를 들어 장기 보유 주식의 위험계수는 20%로 선진시장 상장 주식(35%)보다 낮지만 국내 비상장 주식은 보유 기간과 무관하게 장기 보유 주식으로 분류할 수 없다. 이런 규제가 보험사의 첨단산업, 벤처기업 투자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선진국 보험사는 M&A나 사모펀드 운용사와의 협업 등을 통해 자산운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생명이 자산운용에 특화된 미국계 보험사 레졸루션라이프를 인수하는 데 82억달러(약 11조5000억원)를 투입한 게 대표적이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아폴로, 블랙스톤 등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도 보험사와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1위 생명보험사 메트라이프는 운용자산의 약 40%를 부동산, 구조화 상품,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자산으로 굴리고 있다. 박중호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는 “미국과 일본 보험사는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체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보험사의 자산운용 역량이 나아지면 금융소비자에게도 더 매력적인 저축·연금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