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 한 번에 60만원?"…영유아에 치명적인 '이 병' [건강!톡]

입력 2025-10-02 18:03
수정 2025-10-02 18:12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 유행하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espiratory Syncytial Virus, 이하 RSV)'는 본격적인 가을철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 가장 주의해야 하는 감염병으로 꼽힌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데다 만 2세 이하 영유아의 95% 이상이 최소 한 번 이상 감염을 경험한다. 특히, 만 1세 미만 영아에서는 입원 치료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주로 기침이나 재채기에서 나온 비말과 환자 접촉으로 감염되는데, 평균 잠복기가 5일 정도로 길어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집단 감염이 자주 발생한다

RSV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한 콧물·기침에서 끝나지 않고 세기관지염과 폐렴 같은 중증 하기도 감염으로 악화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인공호흡기 치료까지 필요할 수 있기 때문. 특히, 미숙아나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기라면 위험은 더 커진다.

실제로 RSV로 인한 입원율은 인플루엔자의 약 16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학술지 BMC 감염병에 실린 논문(2020년)에 따르면, 건강했던 영아가 RSV로 입원한 사례 중 27%는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다.

현재 방역 당국은 RSV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영준 교수(대한소아감염학회 연구이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RSV는 단순 감기가 아니라 영유아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서 "이 중에서도 영아만 보면, RSV 감염에 따른 사망 위험이 인플루엔자보다 약 1.2∼2.5배 높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RSV 감염으로 인한 치명적인 상황을 막으려면 영유아 중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영아를 대상으로 선제적인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게 학회의 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RS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방 항체를 접종하는 것으로, 예방 항체 주사는 쉽게 말해 바이러스와 싸울 무기(항체)를 몸속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백신 접종과 비슷하지만, 엄밀히는 약화한 바이러스 성분을 주사해 몸이 스스로 면역체계를 작동시켜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백신과는 다른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미숙아나 선천성 심장질환 등 일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허가돼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팔리비주맙'과 모든 영아에게 접종할 수 있는 '니르세비맙' 두 가지 제품의 예방접종이 가능하다.

이중 니르세비맙은 총 5회를 투여하는 팔리비주맙과 달리 한 번의 근육주사만으로 약 5개월간 효과가 지속된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미국·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사우디아라비아·스페인·스웨덴·스위스·호주 등 24개국 의학 학술단체에서는 모든 영아를 대상으로 니르세비맙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소아감염학회가 지난 5월 모든 영아에게 니르세비맙 접종을 공식 권고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RSV 예방접종이 국가 예방접종에 들어가지 않아 60여만원에 달하는 접종 비용을 부모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RSV를 국가적 차원의 관리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은 2023년부터 연방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 영아에게 무료 접종토록 하고 있으며, 일반 영아도 민간 보험을 통해 접종비를 지원받도록 했고,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정부가 신생아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도입한 이후 정부가 접종비 전액 또는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니르세비맙이 허가된 지 얼마 되지 않아 RSV에 대한 국가적인 질병 부담 수준과 정부 재정 투입 후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아직 없어 이 작업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청은 "향후 분석 결과를 본 뒤 국가 예방접종 또는 건강보험체계로 편입할지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