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용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혁신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2021년 KAIST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네 명의 여성이 의기투합했다. 연구실에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용적 제품을 개발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들이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건 생리대였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쓰는 생활용품인데 마음에 딱 드는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새로운 관성이 되자는 뜻에서 사명은 이너시아(관성)로 정했다. 뉴턴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이 회사 신조였다.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사진)는 “육중한 코끼리를 움직이게 하기 어렵듯이 일상에서 크고 중요한 문제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걸 변화시키는 새로운 관성이 되고 여성이 관성처럼 쓰는 생활용품을 바꾸자는 취지로 사명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내로라하는 연구 인력이 모인 덕에 소재 개발엔 어려움이 없었다. 일반 생리대에 들어가는 미세플라스틱 없이도 흡수력이 좋은 식물성 흡수체(라보셀)를 개발했지만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원하는 품질로 제품화하는 데 1년6개월이 걸렸다. 흡수력을 검증하기 위해 소의 피를 사용해 300여 개 시안 테스트를 거쳤다. 그렇게 탄생한 첫 작품이 ‘이너시아’란 생리대다.
김 대표는 “실험 한 번 하는 데 몇백만원씩 들어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는데 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몰라 무섭고 겁났다”며 “자체 쇼핑몰에서 판매를 시작해 쿠팡, 올리브영 등 닥치는 대로 유통망을 넓혔다”고 회상했다.
이후 좋은 유기농 제품이란 입소문이 나 출시 1년 만에 300만 개가 팔렸다. 김 대표는 “생리대의 겉면과 속, 날개 등 전체를 유기농 순면으로 제조한 데다 미세플라스틱이 없고 흡수력이 좋다는 장점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미세플라스틱에 분비물이 묻으면 냄새가 나는데 우리 제품을 쓰면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주효한 것 같다”고 했다.
자신감을 얻자 여성 영양제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기존에 알약과 분말 형태로만 나오던 여성 건강 보조제 ‘이노시톨’을 먹기 편한 액상으로 개발했다. 김 대표는 “영양제는 여성 호르몬 사이클을 안정시켜 여성 일상을 좀 더 능동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창업 멤버 네 명의 꿈은 ‘한국의 프록터앤드갬블(P&G)’이다. 그는 “P&G는 물에 뜨는 아이보리 비누 하나로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었고 그걸 기반으로 특허를 확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여성의 일상에 기술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펨테크’(female+technology)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이너시아는 창업 4년 차인 지난해 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국내에서만 200억원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미국 아마존에 최근 입점했고 동남아시아, 인도, 유럽 등에도 샘플 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에 내년엔 해외 매출이 국내 수준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매년 최소 두 배씩 매출이 늘고 있어 1000억원 매출 기업이라는 단기 목표를 곧 달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