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세계 최정상급 악단들이 앞다퉈 포디엄을 내주는 미국 출신 명지휘자가 있다. 2009년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의 후임으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자리를 꿰차며 단숨에 거장 반열에 오른 앨런 길버트(58)다.
이 악단 역사상 최초의 뉴욕 태생 음악감독으로 8년간 재임하며 명성을 떨친 그가 이번엔 독일 함부르크 명문 악단인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오는 2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조슈아 벨 협연),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등을 들려준다. NDR 엘프필하모니가 내한 공연을 여는 건 2015년 이후 10년 만이다.
2019년부터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앨런 길버트는 최근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에 기반을 둔 오케스트라인 만큼, NDR 엘프필하모니는 그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는 본능적인 감각과 문화적 친밀감을 지니고 있다”며 “이들과의 브람스 연주는 늘 날 감탄하게 만든다”고 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연주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 음울한 색채와 진지한 어조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면, 클라인의 작품은 짧지만 강렬한 감정적 울림을 전합니다. 여성의 권리 강화에 대한 메시지를 품고 있죠. 모두가 들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더욱 특별합니다.”
길버트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계 어머니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로 뉴욕 필하모닉 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그는 스웨덴 왕립 오페라의 음악감독,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의 명예 지휘자 등을 겸하고 있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하다는 의미다. 2011년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지휘자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가로의 삶이 도전적이라고 했다. 길버트는 “음악은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낡지 않고,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더 많은 역량과 노력을 요구한다”며 “현재에 안주하는 걸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음악은 매혹적이고, 즐겁고, 도전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지휘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길버트는 “본인만의 뚜렷한 관점과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이를 표현하는 과정이 강압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뛰어난 지휘자”라며 “오케스트라에서 직접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자, 단원들이 최고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 역시 계속해서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선 내용 자체가 설득력을 갖추는 것을 넘어 연주자들을 계속해서 격려할 줄 알아야 하죠. 그만큼 지휘는 아주 복잡하고도 신비로운 과정입니다. 앞으로도 더 정직하고 진실하게 음악을 풀어내는 지휘자로서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