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인이 캄보디아에서 여러 범죄에 노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캄보디아로 향하는 한국인 여행객 수가 급감하고 있다. 과거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문화유산 탐방은 물론 자연·휴양지를 우수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즐길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매력이 반감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캄보디아 발길 끊는 한국인들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캄보디아로 향하는 한국인 누적 관광객 수는 10만668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인도네시아가 같은 기간 19% 오르는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대부분 인근 국가로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캄보디아가 국제 범죄 조직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관광 업계 평가다. 그간 캄보디아로 고소득 일자리라는 안내를 받고 갔다가 납치되거나 감금돼 '스캠' 등 피싱 조직에 강제로 관여하게 된 사례가 적지 않게 밝혀졌다.
지난 8월 중국계 갱단이 운영하는 캄보디아 캄폿주 보코산 지역의 한 범죄 단지에서 한국인 남성 박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한국인은 마약 강제 투약 등도 강요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내 브로커의 소개로 은행 통장을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납치·감금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이 마약을 강제 투약한 건 탈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늘고 있다. 이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건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한국인은 2023년 3명에서 2024년 46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1~7월에 체포된 한국인은 이미 144명에 달해 지난해 전체의 3배를 넘어섰다.
국내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캄보디아 치안 및 범죄 관련 지표를 공유하면서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가 치안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국제평화연구소(IEP)의 세계 평화 지수(Global Peace Index)에서 캄보디아의 올해 GPI는 전년 대비 12계단 떨어진 87위로 나타났다. 이는 인터넷 차단, 언론 통제, 폐쇄적 국경 정책으로 악명 높아 '제2의 북한'으로 불리기도 하는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성적표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넘베오의 범죄 지표에서는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국 중 1위인 51.3%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캄보디아로 혼자 출국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조사해서 일단 못 나가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캄보디아 관광을 즐기는 이들이나 현지 체류 중인 교민들 사이에선 "사람들 친절하고 현지 음식이 맛있어 크게 치안 걱정이 없다"며 "본인만 이상한 행동을 안 하면 캄보디아도 살기 좋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 사기 피해 규모가 國 GDP 절반 수준과거 캄보디아는 매력적인 동남아시아 관광지 선택지 중 하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로 익히 알려져 있다. 크메르 제국의 유적과 불교, 힌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데다 시아누크빌 등 해변 휴양지를 비롯해 동남아시아국 중 물가가 낮아 저렴하게 장기간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1970년 수교 후 캄보디아 내전 등으로 단절된 채로 있다 1997년 외교 관계가 정상화돼 교류가 본격화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캄보디아에 대한 주요 투자국이자 원조국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특히 건설, 관광 인프라 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했다. 캄보디아 내 K팝이나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양국의 문화적 호감도도 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등 비행 거리가 가깝고 음식 등 문화가 더 유사한 대체지 부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캄보디아 당국도 사기 산업의 중심지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현지 경찰은 수도 프놈펜 외곽의 칸달주와 북동부 스텅트렝주에서 대규모 단속을 통해 사이버 범죄 조직원 500명 이상을 체포했다. 6월 이후 온라인 사기 관련 체포 용의자만 2137명에 달한다. 대부분 외국인인 가운데, 중국인(589명), 베트남(429명), 인도네시아(271명) 순이었다. 한국인은 57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캄보디아 내 사기 사건 피해 규모가 연간 125억 달러(약 17조4187억원)로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국제앰네스티는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대규모 온라인 사기 사업장이 53곳 있다며, 이곳에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아동노동, 고문, 노예화, 자유 박탈 등 인권침해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캄보디아 프놈펜에 2단계 '여행 자제', 시아누크빌·보코산·바벳 등에 2.5단계 '특별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외교부는 방문 예정인 국민에게 여행 취소·연기를 권고하고, 현지 체류자들에게도 안전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당부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