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무 키워 네이버로 보내는 카카오의 '엑시트 고민'

입력 2025-10-01 18:13
수정 2025-10-02 09:56
이 기사는 10월 01일 18:1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 눈길은 카카오로 향하고 있다. 네이버의 최대 경쟁사인 카카오가 두나무의 3대 주주여서다. 합병 과정에서 카카오가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네이버 계열사의 4대 주주가 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카카오가 1조원이 넘는 투자 이익을 내고 엑시트(자금 회수)에 나설지 주목된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두나무 지분 10.59%를 보유하고 있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25.53%), 김형년 부회장(13.11%)에 이은 3대 주주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카카오의 100% 자회사다.

카카오가 두나무의 주요 주주에 오른 것은 초기 투자 덕분이다. 두나무 창업 1년 만에 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이 자금을 댔다. 김 전 의장이 세운 케이큐브벤처스의 1호벤처투자조합이 두나무에 2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두나무 기업가치는 8억원으로 산정돼 조합은 25%의 지분을 확보했다.

카카오는 이후에도 두나무 투자를 이어갔다. 카카오는 2015년에는 33억원을 두나무에 직접 투자했다. 카카오가 일부 출자한 케이큐브벤처스의 카카오청년창업펀드도 같은 해 두나무에 10억원대 투자를 집행했다. 2018년에는 마찬가지로 카카오가 출자한 케이큐브벤처스의 ‘KIF-카카오 우리은행 기술금융투자조합’이 두나무에 20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양측의 사업 협력도 밀접했다. 두나무는 2014년 ‘증권플러스 for 카카오’ 앱을 출시했다. 당시 송 회장과 김형년 부회장(당시 CSO)는 앱 개발 과정에서 카카오 측과 긴밀하게 논의했다. 두나무가 카카오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카카오가 수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 앱은 카카오톡 계정을 활용한 소셜 기능을 탑재해 시장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양측의 관계는 점차 시들해졌다. 두나무의 핵심 사업은 증권플러스에서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로 전환됐다. 카카오도 2019년 자체 블록체인 ‘클레이튼’을 출시하는 등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카카오가 블록체인 사업에 힘을 빼면서 관련 자회사 그라운드엑스도 사업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결국 양측은 가상자산 사업에서 증권플러스 앱과 같은 눈에 띄는 협업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두나무는 카카오와의 협력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 대신 네이버가 두나무를 품기로 하면서 카카오와의 관계는 정리 수순을 밟게 됐다.

결국 카카오에게 남은 것은 두나무 지분이다. 카카오가 출자한 케이큐브벤처스 1호벤처투자조합은 현물 청산을 통해 두나무 주식을 출자자에게 배분했다. 카카오는 앞서 직접 투자를 통해 확보한 지분을 포함해 총 369만50주를 보유하게 됐다. 카카오는 이를 2022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 모두 현물 출자했다.

네이버와 두나무 측은 두나무 기업가치를 약 14조원으로 보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주식(지분 10.59%)가치를 계산하면 1조4826억원이다.

시장에서는 카카오가 합병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재무적투자자(FI)에게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가 두나무 지분을 처분하지 않으면 합병 뒤 경쟁사 네이버파이낸셜의 주요 주주에 오르는 걸 양측 모두 원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교환 비율은 1대 3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따른 카카오인베스트먼트의 합병 법인 지분율은 약 8%다. 송 회장(약 19%), 네이버(17%), 김 부회장(10%)에 이은 4대 주주다.

네이버는 경쟁사가 주요 주주가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 역시 8% 지분으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네이버와의 합병을 논의한 두나무 경영진이 과거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카카오 측과도 이 점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카오가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1조원이 넘는 차익을 거머쥐게 된다. 한 시장 관계자는 “카카오가 네이버와의 어색한 동거를 원치 않을 것”이라며 “두나무와의 협력이 줄어든 카카오 입장에선 통합 네이버파이낸셜의 성장성이 유망해보이더라도 절호의 엑시트(자금 회수)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