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1931~2023)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0년대부터 연필로 도를 닦듯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묘법’ 시리즈를 시작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했고, 2010년대 이후 그의 ‘단색화’는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 브랜드이자 최고 인기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박서보가 걸어온 길 자체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깊이 연관돼 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현대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 후학을 양성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박서보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담은 자서전 <박서보의 말>과 그의 예술적 여정을 다룬 그래픽 노블 <박서보>가 한국어판과 영어판으로 동시 출간됐다. <박서보의 말>은 박 화백이 생전에 직접 집필한 원고를 엮은 책이다. 젊은 시절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남긴 기록들로, 오랫동안 ‘안 팔리는’ 화가였던 그의 치열한 분투기와 예술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이 담겼다.
박서보의 글이 책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미완의 원고를 바탕으로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노블은 박 화백의 출생부터 최후까지 삶의 주요 사건과 예술 세계의 변곡점을 굵직한 에피소드 위주로 담았다. 조진호 작가가 글과 그림을 담당했다. 아내인 윤명숙 씨(86)와 만나 단숨에 결혼을 결정한 이야기, 1961년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를 둘러싸고 좌충우돌했던 젊은 시절의 박서보 등 인간적인 면모가 진솔하게 담겼다. 만화 형식으로 풀어내 일반 독자도 그의 삶과 업적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