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이 29일(현지시간)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돼버렸다”며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을 방문 중인 정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말하는데, 북한의 전략적 위치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7년 전 위치와 다르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에 적대적이면서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는 국가로 중국·러시아에 이어 북한을 꼽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지난 25일 언론 간담회에서도 “(북한의)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 보유량이 2000㎏에 달한다”며 “이 시간에도 북한 우라늄 원심분리기가 네 곳에서 돌고 있고 멈춰 세우는 게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 장관은 북·미 회담 개최를 낙관하며 그에 따른 남북 협력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는 “노동당 창건 80년 메시지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대미, 대남 메시지”라며 “그걸로 미뤄보면 북·미 양쪽 지도자 모두 지금 서로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북한을) 지원하거나 돈을 낼 생각이 전혀 없지 않나”라며 “(개혁개방을 추구한) 베트남의 길을 가고 싶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 진정이라면 남북 협력밖엔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의 이 같은 일련의 발언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비핵화를 잠정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은 미국 등에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비핵화 요구 포기’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날도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이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성급한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 협력은 북한의 ICBM 기술 완성과 핵 탄두 기술 고도화를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