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많은 바닷가 중에서도 다대포는 독특하다. 아미산을 등대 삼아 500㎞를 떠내려온 낙동강 물줄기와 파도치는 남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다대포 해변이다. 서로 결이 다른 물살이 뒤얽혀 변화무쌍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풍경은 거대한 설치미술 현장 같다. ‘바다미술제’가 6년 만인 올해 다대포로 돌아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엔날레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현대미술을 변주하는 작가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자연, 지역과 세계가 교차하는 실험장으로 삼기에 다대포만 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다대포 해변에는 46점의 작품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여는 국제 미술제인 ‘2025 바다미술제’가 지난 27일 개막하면서다. 1987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부산비엔날레와 교대로 열리는 격년제 행사인 바다미술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규모 야외 현대미술 축제로 꼽힌다. 누구나 바닷가를 거닐다 작품을 마주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데다 모래에 묻힌 오브제, 바닷물에 잠긴 설치작품 등 자연생태와 어우러지는 작업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로 꼽혀 왔다.
2021년과 2023년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에서 열렸던 바다미술제는 올해 다시 다대포로 돌아왔다. ‘Undercurrents(밑물결):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인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이 틈새에서 만들어지는 다층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기에 다대포가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지난 26일 현장에서 만난 김금화 전시감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말해보기 위해 밑물결이라는 주제를 삼았다”면서 “잊고 살았던 것들, 소외됐던 전설과 신화 같은 모든 이야기를 다대포에서 다시 소환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전시는 다대포해수욕장부터 고우니 생태길, 몰운대 해안산책로, 옛 다대소각장, 옛 몰운커피숍 등 당초 해수욕장 위주로 펼쳐졌던 전시공간을 확장한 게 특징이다. 사람과 자연이 호흡하는 자리에 작품을 놓고 잊힌 공간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23개 팀(38명)이 참여하는 전시 작가들의 국적도 17개국으로 다양하다.
환경오염부터 도시 재정비, 철새들의 움직임 등 각자의 리듬을 갖고 전시를 보면 된다. 다대소각장을 가면 빛 바랜 기억에 대한 추모가 담긴 조형섭의 ‘장기초현실’를 볼 수 있다. 다대소각장은 가연성 생활 폐기물을 소각하기 위해 1998년 조성된 산업 시설로 도시가 원활한 신진대사를 할 수 있게 도왔지만, 2013년 가동 중지 후 방치돼 왔다. 최근 호텔, 인공 서핑장 등 관광·레저 시설로 탈바꿈하는 계획이 발표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형섭은 방치와 재창조, 인프라와 상상력의 경계에 선 이곳에 의미와 역사적 흔적을 구현했다.
튀르키예-그리스계 다매체 예술가인 비론 에롤 베르트는 몰운대에서 신화와 기억, 공동체적 흐름을 반영한 다감각적 장소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다대포 끄트머리에 있는 몰운대가 ‘구름이 잠긴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섯 명이 모인 작가 그룹 오미자는 낙동강 하구에서 채집한 씨앗과 식물을 커다란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공을 굴리는 인간의 유희와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의 생존 본능을 결합한 ‘다대포 롤’이다. 양예나, 마르코 카네바치로 구성된 예술 듀오인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부산 특산물인 다시마로 만든 막을 폴리우레탄이 감싼 형태의 작품인 ‘폴리미터’로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흐름을 시각화했다.
공동 전시감독인 베르나 피나는 “장소 특정적이면서 관객 참여형 작품이 많은데, 이를 통해 다대포가 가진 저항, 회복의 힘을 관객이 직접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11월 2일까지.
부산=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