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7000억씩 날릴 판"…현대차 덮친 악재에 '초비상' [모빌리티톡]

입력 2025-09-30 11:30
수정 2025-09-30 13:20

미국에서 누적 판매 10만대를 넘긴 제네시스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이 관세 리스크 시험대에 올랐다. 한미 무역 합의 지연에 따라 한국 차에 관해 대미 관세 25%가 여전히 유지되면서 울산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GV80이 경쟁 차종 대비 '가격 역전 현상' 우려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제네시스에 따르면 GV80은 2020년 미국에서 판매 시작 후 지난달까지 10만446대가 팔렸다. 올해(1~8월)에만 1만7009대 판매되며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20% 증가했다. 지난 7월부터 한국산 차량에 대미 관세 25%가 붙은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GV80은 2021년 미국에서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가 타고 전복 사고를 당했는데도 큰 부상 없이 생존하면서 현지에서 주목받는 차가 됐다. 이후 GV80은 미국에서 △2022년 1만7521대 △2023년 1만9697대 △2024년 2만4301대 등 매년 판매량이 증가했다. 대형 SUV가 선호되는 미국 시장 분위기도 반영됐다. 올 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족이 취임식으로 향하는 공군기 탑승 현장에 GV80이 주차돼 있어 이목을 끌었다.

제네시스는 현지 인기에 힘입어 미국 내 평균거래가격(ATP)도 렉서스 등 주요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증가세가 가파르다.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제네시스의 8월 ATP는 6만4766달러로 지난해(6만2132달러)보다 4.2% 증가했다. 이는 링컨 3.4%, 렉서스 2.6% 등 주요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GV80의 미국 내 판매 사정은 녹록지 않게 됐다. 한미 무역 합의 지연으로 대미 관세 25%가 지속되는 등 불확실성 여파가 핵심 요인. 때문에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밀릴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GV80은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차종인데다, SUV로 마진이 높은 대표적인 모델이다.

현재 GV80의 미국 내 시작 가격은 5만7700달러(약 8086만원)다. 독일의 고급 차 브랜드 BMW와 벤츠의 동급 경쟁 차량 X5 SDrive 40i(6만7600달러), GLE(6만2250달러) 대비 약 1만달러(약 1400만원)가량 저렴해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한국산 차량에 25%의 관세가 붙을 경우,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BMW의 X5나 벤츠의 GLE는 미국에서 현지 생산 중이다. BMW는 현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에서 X5·X6을, 벤츠는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에 공장을 두고 GLE·GLS·EQE 등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GV80이 한국에서 생산돼 수출된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사실상 무관세 적용을 받아왔던 것과 무관치 않다. 일본 또한 과거 2.5%의 관세 적용으로 미국 내 생산 모델을 다양화해왔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지금과 같은 25%의 관세를 계속 부담할 경우 매월 부담하는 관세 비용이 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중권가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현대차 영업이익 전망치는 2조 77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3%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해 제네시스 또한 현지 생산을 점차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GV80은 울산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제네시스 모델 중 중형 SUV GV70만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대차는 2005년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5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6만 대), 2010년 기아 조지아 공장(34만 대)에 이어 올해 3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30만 대)를 지었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제네시스의 현지 생산 차종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미 관세 대응 차원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GV70 외에 다른 모델도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라며 "제네시스가 더 성장하려면 미국에서 더 많이 제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내년 출시 예정인 대형 전기 SUV 'GV90'이 미국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더욱이 올해 2030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판매 목표를 연 35만대로 설정했다. 이는 올해 예상 실적인 22만5천대보다 55% 늘어난 공격적인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제네시스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마진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효자 차량"이라며 "관세 등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현지 생산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