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훼손한게 업무방해죄가 된다고요? [조광희의 판례로 보는 세상]

입력 2025-09-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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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따라서 이 죄가 성립하려면 '업무'란 무엇인지, '위력'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를 '직업이나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초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이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즉,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속성 또는 지속성이다.
현수막 설치, '업무'일까다만 법원은 일회적이거나 일시적인 사무라고 하더라도 본래의 업무 수행의 일환이거나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면 업무방해죄가 보호하는 업무로 본다. 그렇다면 의사 표현의 일환으로 사실이나 의견을 알리기 위해 현수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업무에 해당할까. 그 현수막을 떼어내거나 훼손하는 것은 업무방해죄가 될까. 최근 대법원은 이에 관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2도1665 판결).

이 사건은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인 피고인이 대립 관계에 있던 지주협의회 회장이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지주협의회의 입장을 담은 현수막을 게시하자 이를 떼어낸 사안이다. 검찰은 피고인이 위력으로 지주협의회의 입장 홍보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로 기소했다.



원심은 지주협의회를 운영하던 피해자의 현수막 게시를 통한 홍보 활동이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직업이나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초했다고 보기 어려운 단순한 의사 표현 수단으로, 일시적으로 현수막을 설치해 사실이나 의견을 알리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인 업무로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의 보호법익이 '업무를 통한 사람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서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시하는 행위를 방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부작위도 위력으로 볼 수 있나그렇다면 위력이란 무엇일까. 위력은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을 뜻한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가리지 않는다.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는 적극적인 행동, 즉 '작위'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도 위력으로 인정돼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처럼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에서 부작위범이 성립하려면 그 부작위를 실행행위로서의 작위와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즉, 행위자가 단순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위력에 해당하려면, 그것만으로도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제압할 만한 정도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은 부작위로 인한 업무방해죄 성립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2025. 9. 4. 선고 2024도7386판결).


인감도장 안 돌려준게 업무방해?사안은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피고인이 후임 회장으로 선출된 피해자에게 입주자대표회의 은행거래용 인감도장과 사업자등록증 원본의 반환을 요구받고도 이를 거부한 경우다. 검찰은 피고인이 위력으로 피해자의 회장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이 사건 인감 등의 인도 또는 반환요구를 거부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다. 부작위가 위력에 해당하려면 행위가 피해자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정도에 이르러, 적극적인 방해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법리를 앞세웠다.

즉,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단순히 인감도장 인도를 거절하거나 반환하지 않은 행위는 적극적인 방해 행위와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없고, 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거나 현저히 곤란해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