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입증 못하면 200%"…고무줄 美관세에 대혼란

입력 2025-09-29 17:07
수정 2025-09-30 00:36

미국의 고무줄 관세 행정으로 수출 기업이 겪는 혼란이 커지고 있다. K뷰티의 화장품 용기는 들쑥날쑥한 원산지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20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받는가 하면 철강·알루미늄 함량가치도 임의로 결정돼 속앓이 중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품목의 상호관세율에 대한 한·미 간 협상 타결이 늦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달 말까지 또다시 자국 기업으로부터 추가 관세를 적용할 파생품목을 신청받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멋대로인 관세에 속수무책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지난달 18일부터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407종에 부과 중인 품목관세 항목에 화장품 14종을 포함시켰다. 완제품에 품목별 관세를 매길 때는 철강·알루미늄 ‘함량가치’에 대해서만 50% 관세가 부과되지만, 알루미늄의 경우 ‘알 수 없음’으로 기재하면 전체 완제품에 대해 200% 관세를 물게 된다. 이 때문에 수출액의 200%에 달하는 관세를 적용받는 K뷰티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곽이근 KOTRA 해외진출상담센터 수출전문위원은 “화장품 회사는 2, 3차 협력사가 만든 용기에 포함된 알루미늄을 어느 국가에서 제련했는지 알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품목은 반드시 원산지 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품별 철강·알루미늄 함량가치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완제품의 관세를 정할 때 기준인 철강·알루미늄·구리의 함량가치에 대해 ‘원재료’만 포함할 것인지, 가공비와 인건비 등의 추가 비용까지 반영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 10억원짜리 기계를 수출할 때 철강·알루미늄의 원재료가 2억원어치 포함됐다고 하면 품목별 관세는 2억원의 50%인 1억원이 붙는다. 나머지 8억원에 대해선 상호관세 15%를 부과받는다. 그런데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과세 대상에 가공비와 인건비 등이 포함되면 50% 관세율이 2억원뿐 아니라 제반비용에도 적용된다. 최대규 신한관세법인 관세사는 “미국 정부가 구체적인 지침을 주고 있지 않아 당장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제반비용을 포함한 부분의 50% 관세를 내가며 수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아리송한 원산지 논란원산지는 함량가치보다 더 안갯속이다. CBP는 원산지를 ‘실질적 변형’이 이뤄진 장소로 정의하고 있다. 물품의 이름이나 특성, 용도가 바뀌면 그곳을 원산지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해석은 주관적이라는 게 수출 기업들의 얘기다. 대만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인쇄회로기판(PCB)을 제조해 중국으로 보낸 경우가 대표적 예다. PCB를 제외한 부품은 모두 중국산을 쓰고 중국에서 조립한 휴대폰이라고 하더라도 CBP는 이 제품을 대만산이나 말레이시아산으로 본다. 핵심인 PCB를 해당 국가에서 제조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미국에서 수입한 엔진을 중국에서 다른 부품과 결합해 생산한 뒤 다시 미국에 수출한 지게차는 중국산으로 판단한다. PCB는 휴대폰의 ‘본질적인 특성’을 지녔지만, 엔진에는 지게차의 본질적인 특성이 없다는 이유지만 기업들은 미국 세관당국의 주관적 잣대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정부가 아직 미국과 큰 줄기의 상호관세 협상을 끝내지 못해 이미 확정된 철강 등 품목관세의 세부 사항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떠안는 부담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