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무 시스템 647개를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은 LG에너지솔루션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튄 불꽃이 시발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이 사건이 주가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는 분위기다. LG엔솔 배터리서 '스파크'…전산망 셧다운2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정부 전산망을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한때 마비됐다. 정부는 28일 오전 7시 기준 50% 이상, 핵심 보안장비는 전체 767대 중 763대(99%) 이상 재가동을 시킨 상태다.
이번 화재 사건의 원인은 LG에너지솔루션의 리튬이온배터리로 알려졌다. 무정전 전원장치(UPS)를 지하로 이전하던 중 UPS 안에 들어가 있는 54V(볼트) 리튬이온배터리 한 개에서 불꽃이 튀며 화재가 시작됐다는 게 행안부와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무정전 전원장치는 전산 시스템에 전력 공급이 끊길 것을 대비해 전력을 일정 시간 공급해주도록 하는 장치다. 품질 논란 번질까 촉각…'10년 권장기한' 관건증권가는 이번 화재로 리튬이온배터리 품질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납축전지에 비해 에너지밀도가 높다.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다만 화재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리튬이온배터리 안의 음극과 양극을 막는 분리막이 깨지면 음극·양극이 섞이면서 열 폭주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다. 열 폭주가 발생하면 내부에서 산소가 발생해 불이 잘 꺼지지 않는다.
행안부와 소방당국 등은 이번에 화재가 난 배터리는 2014년 8월 국정자원 전산실에 설치됐다. 다만 UPS 자체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배터리를 공급받은 다른 업체가 제작해 국정자원에 납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배터리는 권장 사용연한이 약 10년이다. 행안부가 설명한 설치 시점이 맞다면 권장 사용기간을 약 1년 넘긴 상태다. 다만 일각에선 이 배터리의 도입 기간이 10년 미만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의 품질 책임 논란이 가닥을 잡으려면 소방당국 등의 추가 조사에 따라 '10년 연한'을 지났는지 아닌지가 밝혀져야 할 전망이다. 작업 중 실수 가능성도 배제 못해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작업자의 부주의·실수로 일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작업자 13명이 5층 전산실에 있는 UPS를 지하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행안부와 소방당국은 '전원이 차단된'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설명했지만,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UPS는 직류 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옮기거나 취급할 때 전원을 완전히 꺼야 한다.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케이블을 분리하면 전압이 순간적으로 높아져 화재나 감전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때문에 일각에선 작업자가 전원을 끄지 않은 채 케이블을 분리하면서 배터리에서 스파크가 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0년가량 아무 문제가 없던 배터리가 이전 작업 도중 스파크를 낸 것"이라며 "그렇다면 달라진 외부변수가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 등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산실에서 반출해 수조에 담가둔 배터리들은 2∼3일가량 잔류 전기를 빼내는 안정화 작업을 거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한 이유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주가 영향은증권가는 2020년 10월16일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을 돌아보는 분위기다. 배터리로 인해 주요 IT 시스템이 멈춘 가장 가까운 사례라서다.
당시엔 SK C&C 판교캠퍼스 A동에 있던 UPS용 SK온(공급 당시 SK이노베이션)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스파크가 나 화재로 번졌다. 각각 11개의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장착된 랙(선반) 5개가 세트를 이루고 있었는데, 당시 화재로 1개 세트가 모두 탔다.
이때 화재 영향으로 카카오는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등 주요 서비스가 약 10시간 이상 장애를 겪었다. 카카오톡 서비스를 시작한지 12년 만에 최장기간 서비스 장애였다.
당시 화재는 모기업인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SK이노베이션 주가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장비에 쓰인 배터리가 SK온 배터리라고 알려진 것은 10월17일 장마감 후. 다음날인 18일 증시에서 SK이노베이션은 전날과 같은 15만9000원에 장을 마쳤다. 이후 19일엔 4.47% 상승, 20일엔 5.20% 하락하는 등 등락을 겪었으나 사고 발생 5거래일간 주가 변동폭 자체는 크지 않았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SK온은 상장사가 아니고, 모기업 SK이노베이션은 사업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배터리 화재와 같은 단일 이슈로 주가가 크게 변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은 당시 매출 비중 중 정유·화학 부문이 80% 이상을 차지했고, 배터리 사업은 10% 수준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데이터센터·서버실이나 배터리는 사용해야 하는 만큼 화재 사건이 특정 기업의 배터리 수요를 확 줄이기는 힘들다”며 “오히려 당시엔 서비스 운영에 직접적 타격을 받은 카카오 주가가 확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번 화재도 배터리 화재 원인에 대한 경찰과 관계당국의 공식 조사 결과 발표까지 일정 시일이 걸릴 전망”이라며 “화재가 품질 논란에 직결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주가 향배가 갈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