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 보자” 뉴욕에 몰린 전세계 투자자 북새통

입력 2025-09-28 10:09
수정 2025-09-30 18:44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 록펠러센터. 마천루가 밀집한 이 광장의 북쪽 건물에 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 12곳의 피칭(투자 유치 설명)을 보기 위해 전 세계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가 모여들었다.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과 사업 모델을 공부하러 온 뉴욕 기반 창업자들과 에너지 전환, 순환경제, 인공지능(AI) 등 각 분야 연구자들도 집결했다. 행사장 수용 인원인 300명을 훌쩍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고, 결국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매년 9월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기후 행사 '뉴욕 기후주간(Climate Week NYC)'에 발맞춰 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과 글로벌 투자자·파트너를 연결하는 '코리아 클라이밋 테크 서밋(Korea Climate Tech Summit)'이 처음 열렸다. 행사를 기획한 뉴욕의 기후테크 특화 액셀러레이터 위트니스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의 정수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훌륭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며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뜨거워 정말 놀랐다"고 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테크놀로지 벤처, 블랙혼벤처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소풍벤처스, D3쥬빌리파트너스 등 국내외 유명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도 파트너로 참여했다. 차세대 에너지부터 AI 기반 재활용 기술까지 이날 피칭의 기회를 쥔 스타트업은 단 12곳. 차세대 에너지 기술, 재활용 활성화 기술부터 대체 소재, 폐기물 처리 로봇까지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투자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사업 현황과 성장 전략을 어필했다. 세계 최초로 차세대 바나듐 이온 배터리(VIB)를 개발해 상용화한 스탠다드에너지의 김부기 대표는 현장 참석이 불발됐음에도 화상으로 VIB 기반 에너지저장장치(ESS) 솔루션의 시장 확장성과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13개국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뉴에너지넥서스의 스탠리 응 디렉터는 "리튬과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양산 역량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버려지는 태양광 패널에서 강화 유리, 알루미늄, 은, 구리, 폴리실리콘 등 고순도 자원을 비용효율적으로 회수하는 기술을 발표한 다이나믹인더스트리도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독자 개발한 비파쇄 물리적 분리 공정으로 경쟁사 대비 더 저렴하고 빠르게 더 많은 귀금속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주장이다. 특히 미국에 총 40만 톤 규모의 공장 네 곳을 구축할 계획이라는 발표에 참석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미국내 자원 공급망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LG전자,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반도체 스타트업 스트라티오도 이날 무대를 통해 미국 투자 유치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게르마늄 기반의 근적외선(SWIR) 이미지 센서 기술로 카메라 센서, 휴대용 분광기 등을 직접 생산하고 있는 스트라티오는 플라스틱·섬유 등 소재 구성을 식별해주는 비전 AI 기술 '인프라레드 AI'를 선보였다. 이제형 스트라티오 대표는 "경쟁사 대비 비용과 전력 소비는 10분의 1로 줄이고 정확도는 두 배 높였다"며 "재활용 활성화, 스마트 홈, 산업용 품질 검사,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해양 청소 무인 로봇으로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쉐코, 폐플라스틱 해중합 기술로 '무한 재활용'을 겨냥한 테라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를 차지하는 시멘트 생산 공정에서 탄소를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트라이매스, AI 기반 건물 에너지 관리 코파일럿 'Opti'를 소개한 나인와트, CCTV·비디오 등 일반 카메라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비전 AI 기술 '비전플러스'를 보유한 딥비전, 버섯 균사체로 대체 가죽 소재를 개발한 마이셀, 미생물을 이용해 폴리프로필렌(PP)만 남기고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생명공학 기술을 보유한 리플라, 빌딩 단위의 스마트 정수 솔루션을 운영하는 지오그리드, 버려지는 굴 껍데기로 저탄소 칼슘 소재를 만드는 PMI 바이오텍 등 한국의 대표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이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치열한 발표전을 벌였다.


다트머스대에서 에너지 전환을 연구하고 있다는 베트남인 유학생 충 담은 "한국 스타트업들의 기술에 정말 놀랐다"면서 "베트남의 스타트업도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에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트럼프 '反기후' 정책에도 관심 여전기후변화 대응에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친(親)화석연료 정책, 탄소 배출 규제 철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융권과 기업들의 기후테크에 대한 관심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협약에서 다시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기후 변화에 대해 “세계에 퍼진 가장 위대한 사기(con job)”라고 저격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 뉴욕 기후 주간에서도 '탈(脫)탄소' '기후 변화 대응' 같은 표현은 확연히 줄었다. 그럼에도 에너지 효율·저감, AI를 활용한 순환경제 활성화 기술은 수요가 여전하다.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수요로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저렴하게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응 뉴에너지넥서스 디렉터는 "기후테크는 워낙 범위가 넓다. 미국 연방정부는 원자력, 지열 등의 분야를 계속 지원하고 있고 에너지 효율 개선, 깨끗한 물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며 "이런 흐름은 특정 행정부의 정책 하나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은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티모시 호프만 컬럼비아 테크 벤처스 디렉터는 "기후테크 분야라고 특별히 불리하지도 유리하지도 않지만 관세와 미국 금리, 경제 방향의 불확실성 등으로 전반적으로 모든 섹터에서 벤처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면서 "투자자들은 이미 투자한 기업에 더 집중하고 신규 투자엔 신중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