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硏 "중국 의존도 더 높아진 韓 소부장, '생존' 차원에서 전략 짜야"

입력 2025-09-26 11:00
수정 2025-09-26 11:56


한·미 간 무역 합의 이후 유례없는 규모의 대미 투자로 국내 산업 생태계가 공백상태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이 26일 발표한 '소부장과 공급망: ‘진짜성장’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 보고서는 "지난 25년간 일본산 의존도 극복과 국산화에 집중했던 소부장 정책 여정이 앞으로는 ‘생존’을 건 장기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조치법 제정 이후 국가 차원의 R&D 지원(2001~2019년 5.4조 원 투자)으로 생태계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율은 2015년 44%에서 2022년 73%까지 확대됐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완성품 만드는 기업과 부품·소재 공급 기업이 함께 연구개발·투자해서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수요-공급기업 협력 기반이 제도화돼 '가마우지 구조' 해소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까지 총 64건의 수요-공급기업 협력모델이 승인되기도 했다.

가마우지 구조란 한국이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해도, 핵심 부품·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본이 최종 과실을 가져가는 산업 종속 구조를 빗댄 표현이다. 2021년엔 요소수 대란을 거치며 첨단 소부장에 국한된 공급망 문제가 범용 소부장으로 확산됐고, 중국발 리스크 대응 필요성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보고서는 소부장이 최근엔 '미·중 충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철강·알루미늄에는 25%·50% 관세가 연이어 부과됐고 407종 파생상품에 50% 추가관세가 적용되는 등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에서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실장은 "무역합의 이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로 국내 소부장 생태계가 양적·질적 공백상태가 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원료부터 첨단 부품까지 완성형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압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중 수입 집중도는 2012년 23%에서 2024년 29.5%로 상승했다. 특히 정밀가공장비(5.8%→31.3%), 제조로봇·자동화장비(10.4%→32.1%) 의존도가 급등했다. 전체적으로 특정국 의존도가 70%를 넘는 ‘공급망 취약 품목’은 1946개(수입액 1365억 달러)에 이르며, 이 중 중국 비중은 품목 수 55.8%, 금액 기준 31.5%에 달했다.

이에 보고서는 "향후 소부장 전략은 ‘생존’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발 관세 충격에 대응할 유동성 공급과 북미 진출 지원 패키지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생태계 전환, 중국산 소부장과의 경쟁·활용 병행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산업별 미래 전략에 따라 투자·규제·R&D·재정지원이 결합된 맞춤형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협력 모델을 넘어 동맹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도 제시했다. 기존의 수직적 협력(수요-공급 관계)만으로는 미·중 충격을 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보고서는 "앞으로는 경쟁사 간 수평적 동맹, 지역·글로벌 기업 간 동맹까지 확장된 협력모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국내 경쟁사였던 포스코-현대제철이 해외시장 대응을 위해 전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나, 미국을 포함한 아세안 등 신흥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와 GM이 협력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