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약 못 산다" 초비상…中 때문에 난리라는데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5-09-27 07:00
수정 2025-09-27 07:35



세계 각국이 의약품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필수 약을 충분히 구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다.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 관련 공급망을 장악한 영향이 크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앞세워 의약품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글로벌 의약품 산업 판도는 흔들릴 전망이다.의약품 품절 사태27일 미국의 의약품 가격 추적 비영리 연구기관 '46브루클린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메디케이드 약값 참조 기준인 'NADAC(National Average Drug Acquisition Cost)'을 분석한 결과 지난 7월 기준 전체 제네릭 약(특허 만료 활용 의약품) 가격은 1년 전보다 6.9% 상승했다. 환자가 가장 많이 복용하는 경구 고형제는 9.1% 급등했다.

'46브루클린 리서치'는 "처방 약 물가는 전체 시장의 가중 평균치이기 때문에 소수의 필수 의약품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가격 급등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라며 "병원과 환자가 실제로 겪는 가격 압박은 이 평균 지표 뒤에 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제네릭 쥐어짜기' 현상에 따른 가격 상승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네릭 시장은 박리다매 구조로 수익성이 낮다. 관세와 공급망 불안이라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제조사는 생산을 포기하고 시장에서 철수하기 쉽다. 공급자가 줄어들면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소수의 남은 공급자가 가격 결정권을 쥐고 폭리를 취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이 있어도 약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보건의료약사협회(ASHP)에 따르면 올 상기 현재 활성 품절 건수는 253건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였던 2024년 1분기(323건)보다는 하락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약품에 이런 형상이 나타났다. ASHP는 지난 22일 기준 아세트아미노펜 주사제, 미다졸람 주사, 모르핀 주사 등 핵심 주사제가 품절됐다고 공지했다. ADHD 치료제인 리스덱삼페타민 등도 품절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저렴한 약을 위한 환자들(Patients For Affordable Drugs)'의 대변인은 "의약품 품절과 가격 급등은 환자의 치료를 위협하고 엄청난 재정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며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중국과 인도에 종속된 글로벌 의약 산업글로벌 약값 상승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제약 산업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각국의 보건 당국은 재정 절감을 위해 '최저가 입찰' 방식을 고수했다. 이는 생산 단가가 가장 저렴한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 쏠림 현상을 낳았다. 글로벌 공급망의 상류를 중국과 인도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항생제 원료의약품(API)의 80% 이상이 아시아에서 생산된다. 유럽의 비영리단체인 '핵심의약품연합' 추산에 따르면,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의약품에 사용되는 API의 55%에서 80%가 중국과 인도산이다. 중국산 API는 유럽산보다 가격이 최대 40%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존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되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런 경제적 효율성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최근 유럽회계감사원(ECA)은 보고서를 통해 EU 전역의 의약품 부족 사태가 만성적이고 그 주된 원인이 아시아에 대한 과도한 생산 의존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ECA 특별조사를 이끈 클라우스 하이너 레네 감사위원은 "약품 부족은 환자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의사·약국·국가 모두에 큰 비용을 부담시킨다"고 경고했다. 미국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미국은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 25일 미국 행정부는 오는 10월 1일부터 수입되는 모든 브랜드 및 특허 의약품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인 기업은 예외로 뒀다. 이 정책은 지난 4월 미국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의약품 및 API 수입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 이후 나온 정책이다. 미국이 철강과 같은 분야에 사용했던 232조를 의약품에 적용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미국 행정부가 의약품 공급망을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로 다루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EY)이 미국제약협회(PhRMA)의 의뢰로 수행한 분석에 따르면 수입 의약품에 25%의 관세만 부과해도 미국 내 연간 약제비는 약 510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약값의 최대 12.9% 인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됐다. 100% 관세가 현실화하면 그 충격은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000억 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 미국의 시민단체 '314 액션'은 "만약 이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끊어진 공급망과 지정학적 이동유럽 역시 이른바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대응하고 있다. EU는 '핵심의약품법' 제정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3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이 법안의 핵심은 공공 의약품 조달 시스템의 개혁이다. 과거 '최저가 입찰' 방식에서 벗어나, 입찰 평가 기준에 '공급망의 안정성 및 다변화' 등 비가격적 요소를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는 가격이 조금 비싸도 EU에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유럽' 의약품에 가산점을 부여해 EU 제약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탈(脫)중국'은 구호처럼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 탈중국을 최종 원료의약품(API)의 생산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관련 의존성은 공급망의 더 상류인 '핵심출발물질(KSM)'과 '중간체'가 더 핵심이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 판매되는 의약품 중 최종 API가 중국산인 경우는 약 25%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 API를 만드는 데 필요한 KSM과 중간체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의존도는 더 커진다.



항생제 생산에 필수적인 발효 공정, 스타틴(고지혈증 치료제), 사르탄(고혈압 치료제) 계열 약물 합성에 필요한 특정 화학 공정에 사용되는 중간체는 중국 기업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업스트림의 덫'을 뜻한다. 특정 산업 또는 경제의 흐름에서 원자재나 기반 산업 등 상류(업스트림) 부문의 문제 또는 구조적 한계를 뜻한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이 최첨단 API 합성 공장을 자국에 짓는다고 해도, 그 공장에 투입할 핵심 원료를 중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자동차를 독일에서 조립하지만 엔진 블록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과 같다.효율성의 종말과 비용의 증가의약품 공급망의 재편은 거시경제에도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경제적 효율성'이 '지정학적 안보'에 자리를 내주면서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는 구조적인 비용 상승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지정학적 경쟁이 부과하는 '세금', 즉 '지정학적 인플레이션 세금'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과거 효율적인 '적시 생산(Just-in-Time, JIT)' 글로벌 공급망은 생산을 가장 효율적인 곳(주로 중국)에 집중시켜 수십 년간 강력한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했다. 재고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 경제적 효율성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안보가 공급망을 조직하는 최우선 원칙이 됐다. 공급망이 언제든 끊길 수 있고, 갑작스러운 관세 폭탄이 떨어질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JIT는 약점이 된다.

기업은 공급 중단에 대비해 더 많은 원자재와 부품 재고를 쌓아두는 '만일 대비(Just-in-Case, JIC)' 전략을 택할 전망이다. JIC로 전환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 창고 보관 비용이 늘어나고, 재고 자산에 묶이는 운전 자본이 확대된다. 고금리 환경에서 기업 수익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정학적 파편화가 심화할 경우 장기적으로 세계 GDP가 최대 7%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글로벌 제약 산업의 지각 변동은 월스트리트의 투자 지형도까지 바꾸고 있다. 제약 산업의 성장에 필수인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늘었다. 해당 투자 테마의 중심에는 일명 '라이프사이언스 및 cGMP(최신 우수 제조 관리 기준) 특화 자산군'이 있다. 실험실(Lab)과 cGMP 인증 생산 시설을 개발하고 임대하는 특수 부동산을 뜻한다.

올해 들어 생명과학 관련 부동산 시장은 뚜렷한 회복 신호를 보였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웨이크필드의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라이프사이언스 분야의 R&D 자본시장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42% 급증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및 투자 관리 기업 JLL의 미주 라이프사이언스 담당 트래비스 맥크리디 사장은 "공급망 강화 의지, 지정학적 리스크, 데이터 보안 우려, 불확실한 관세 환경 등이 제약사의 장기 전략에 리쇼어링을 포함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혜자는 클린룸 건설 시장과 자동화 기술 기업이다. 클린룸은 의약품 생산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시설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설비 투자 사이클과 직접적으로 연동된다. 글로벌 클린룸 건설 시장 규모는 올해 62억 달러에 달하며, 향후 10년간 연평균 6.9%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청정시설 건설사 엑사이트의 볼프강 부헬레 최고경영자(CEO)는 "유럽과 미국의 대규모 하이테크 시설 투자로 고객 밀착 전략이 빛을 보고 있다"며 유럽·미국 사업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기회와 위기의 갈림길에 선 한국
최근 미국과 유럽 정책은 글로벌 제약사에 신뢰할 수 있는 비 중국계 생산 파트너를 찾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수혜자로 부상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사와 13억 달러 규모의 대형 제조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최근 미국 기반 대형 제약사와 2030년까지 이어지는 상업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바이오 CDMO의 성공 뒤에 한국 제약 산업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합성의약품의 근간이 되는 원료의약품(API)의 취약한 자급 구조 때문이다. 한국도 필수의약품의 원료는 대부분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1년 기준 24.4%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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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