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품은 밀라노…패션 심장이 꿈틀댄다

입력 2025-09-25 20:44
수정 2025-09-26 01:55

“밀라노는 강하고 두려움이 없는 곳, 그러면서도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도시다. 밀라노가 지금의 나를 키웠다.”

최근 작고한 ‘패션계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한때 의사의 길을 걸은 한 청년이 아르마니라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밀라노라는 요람 덕분이라며.

‘패션의 도시’ 하면 어떤 도시가 떠오르는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그중에서도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 수많은 럭셔리 패션하우스가 밀라노에서 태동했다. 골목마다 숨겨놓은 보석 같은 아틀리에, 부티크들은 끈끈한 패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밀라노의 매력은 매년 2월과 9월 열리는 패션위크 때 한껏 무르익는다. 밀라노대성당, 스포르체스코성 등 역사적인 유물은 화려한 런웨이로 변신한다. 세계 디자이너와 패션 피플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지난 23일 개막한 ‘밀라노패션위크(MFW) 2026’은 유난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3주 전 세상을 떠난 ‘패션의 왕’ 아르마니의 숨결을 품은 마지막 런웨이가 펼쳐져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레라미술관이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패션 전시 ‘아르마니 50주년 회고전’에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내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거장의 죽음 뒤에선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구찌는 새롭게 브랜드를 이끌어나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뎀나’의 데뷔 컬렉션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펜디는 궂은 날씨에도 산뜻한 파스텔톤의 꽃 컬렉션으로 새로운 봄을 예고했다. 베르사체, 보테가 베네타, 질샌더의 신규 CD 데뷔 컬렉션도 이어졌다.

추모와 설렘의 뒤섞임. 그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밀라노라는 요람에서 수많은 디자이너가 호흡하며 끊임없이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애도의 순간조차 창조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다는 것. 다시 밀라노의 시간이다.'유럽의 교차로' 밀라노…글로벌 패션 혁신 DNA 끊임없이 흘러든다
밀라노는 왜 '패션의 수도'가 됐나
밀라노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수도로 불린다. 매년 2월과 9월 패션위크를 열며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4개 도시 중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란 표현이 가장 걸맞은 곳이다. 프라다,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가바나 등 밀라노에서 태동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수백 년 역사의 가죽·원단 공방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밀라노패션위크(MFW) 때는 두오모 광장부터 왕궁, 오페라 극장 등 도심 전체가 패션으로 물든다.

프레타포르테, 패션을 혁명하다

밀라노 패션의 역사는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출신 사업가 지오바니 바티스타 지오르지니가 ‘더 이상 샤넬, 구찌 등 프랑스 브랜드의 하청업체가 아니라 이탈리아만의 명품을 만들자’며 시작한 패션쇼가 계기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패션은 프랑스의 오트쿠튀르(맞춤복)와 비슷했다. 장인들이 몇몇 상류층을 위해 만드는 옷이 흐름을 좌우했다.

1950년대 후반, 세계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프레타포르테(기성복)다. 세계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패션은 더 이상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기성복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점차 높아졌다. 밀라노는 그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완벽한 도시였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교차로에 있어 해외 바이어들이 쉽게 오갈 수 있고, 제조·섬유업 기반도 탄탄했다. 마랑고니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 학교가 인재를 키워냈고, 패션 매거진들이 그 흐름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세계 인재, 돈, 언론을 하나로 잇는 ‘패션 허브’가 된 것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전역의 가죽 장인과 공방을 세계와 연결하는 무대가 됐다. 1958년 시작한 밀라노패션위크는 그 시작이었다. 유럽을 넘어 미국 바이어들도 밀라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그 속에서 브랜드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 ‘갤러리아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쇼핑몰의 작은 가죽 매장에서 시작한 프라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로로피아나 등 인근 도시에 있던 오랜 고급 원단 공방들도 밀라노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갔다.

‘제2의 프라다’ ‘제2의 아르마니’ 주인공은 누구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밀라노라는 문을 통해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슈트를 만든 브리오니가 대표적이다. 영국 슈트보다 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실루엣을 지닌 ‘이탈리아 럭셔리 슈트’의 정석을 선보이며 할리우드를 휩쓸었다. 당시 배우들뿐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까지 모두 브리오니를 입었다. 아르마니의 ‘미니멀리즘 슈트’는 당시 황금기이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이탈리아만의 브랜드를 만들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꿈이 밀라노에서 이뤄졌다.

최근 밀라노패션위크는 럭셔리 혁신을 더해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 ‘MFW 뉴 제너레이션’과 같은 프로그램은 더 많은 신진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누가 ‘제2의 프라다’ ‘제2의 아르마니’로 밀라노 패션의 명성을 이어갈까. 지금 이 순간에도 패션의 심장은 여전히 밀라노에서 가장 뜨겁게 뛰고 있다.중세 요새에선 '베르사체' 폐증류소에선 '프라다'…어디든 런웨이가 된다
밀라노 패션은 '도시'를 입는다
매년 2월과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패션 도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전, 성당, 극장 등이 모두 런웨이로 변신한다. 현대와 미래가 공존하는 컬렉션이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옛 공장과 증류소는 럭셔리 브랜드의 무대로 탈바꿈한다. ‘도시 전체가 런웨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팔라초 레알레’를 가보자. 18세기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가 머물던 왕궁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곳 1층 대연회장 ‘살라 델레 카리아티디’에서 쇼를 열기 위해 매년 치열하게 경쟁한다. 페라가모, 안드레아다모 등이 여기서 패션쇼를 했다.

15세기 밀라노를 통치한 스포르차 가문의 스포르체스코성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거대한 요새이던 이곳에선 미켈란젤로 등 거장의 예술품과 함께 패션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베르사체는 최근 스포르체스코성에서 2025 봄·여름(S/S) 시즌 패션쇼를 열어 고풍스러운 성곽과 현대적인 컬렉션의 조화로 호평받았다. 세계 성악가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라스칼라 극장은 패션위크 기간 시상식 무대로 바뀐다.

통상 왕궁이나 프라이빗 공간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초청장을 받은 소수만 참석할 수 있다. 밀라노패션위크(MFW)에선 누구나 볼 수 있는 쇼도 열린다. ‘밀라노의 심장’으로 불리는 두오모 광장이 그 무대다. 1984년 밀라노 기반의 브랜드 트루사르디가 이곳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연 게 시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엔 두오모 광장 앞 밀라노대성당 외벽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모두가 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MFW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패션쇼였다. 2022년엔 몽클레어가 브랜드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두오모 광장을 2000여 명의 퍼포먼서로 꽉 채웠다.

밀라노에선 버려진 공장도 럭셔리 브랜드 쇼의 무대가 된다. 밀라노 외곽에 있는 ‘구찌 허브’는 1915년 지어진 항공기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폐증류소를 개조한 ‘폰다지오네 프라다’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에는 프라다그룹의 미술 컬렉션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패션위크 때는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런웨이로 탈바꿈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으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이 디자인한 카페 ‘바 루체’도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밀라노=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