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마이크론의 HBM4 승부수

입력 2025-09-25 17:35
수정 2025-09-26 10:11
마이크론은 1978년 감자로 유명한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시(市)에 설립됐다. 워드 파킨슨 등 마이크론 공동 창업자들이 감자 농장주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한 일화는 계속 회자된다. 지금도 미국 언론들은 마이크론의 역사를 설명할 때 ‘포테이토 머니’의 공헌을 빼놓지 않는다.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들도 마이크론을 ‘감자집’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론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199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메모리반도체사업을 가져왔고 2001년엔 일본 도시바에서 D램 사업을 인수했다. 세계적인 메모리업체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일본 엘피다 인수였다. 엘피다는 치킨게임 여파로 수익구조가 악화해 매물로 나왔지만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과 대만 기업들의 몰락에도 살아남은 마이크론은 10년 넘게 D램 세계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운이 없는 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론이 찾은 승부수는 속도전이다. 2021년 2월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4세대 D램(1a D램)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마이크론은 종종 이변을 만들었다.

이번엔 마이크론이 내년 시장이 열리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와 관련해 파격적 전략을 꺼내 들었다. HBM4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 다이’를 자체 개발·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로직 다이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에 맡기는 경쟁사들과는 다른 행보다. 파운드리 외주 비용을 아끼고 개발 신속성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마이크론의 전략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있다. HBM4는 이전 세대 제품 대비 '두 배 이상'의 데이터 처리 성능이 필요하다. 큰손 고객 엔비디아가 HBM4의 요구 성능을 계속 올리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마이크론의 자체 기술력으론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HBM 1위 SK하이닉스는 수성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전성기 때 기술력을 회복 중이다. 마이크론의 전략은 승부수일까 무리수가 될까. 내년 HBM4를 둘러싼 3파전에서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