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끝내 나를 구원한 노동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등으로 한국 문단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온 소설가 박상영이 24일 ‘아르떼 살롱’ 무대에 섰다. 주제는 ‘나를 구원한 창조적 글쓰기’. 한국경제신문의 프리미엄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arte)가 운영하는 아르떼 살롱은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초청해 강연과 토크 형식으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이날 강연은 100명 가량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다산홀에서 열렸다.
박 작가는 강연의 첫머리에서 “거창한 구원담이라기보다 글과 함께 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곧 이어진 고백은 무겁고도 솔직했다. IMF 시절 부모의 생계로 홀로 집에 남겨졌던 유년기, 그에게 책은 유일한 피난처였다. “이웃 누나 집 책장에서 처음 꺼낸 게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이었다. 살인과 불륜이 가득한 세계는 초등학생에게 충격이자 달콤함이었다.” 이후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으며 “살아 있는 한국어 문학의 충격”을 경험했다고 했다. “책이야말로 비밀 많은 아이였던 나를 달래준 매체였다.”
사회에 나와서도 글쓰기는 그를 지탱했다. 잡지사 기자로 시작했지만 광고성 원고와 받아쓰기만 반복되는 현실은 좌절이었다. “내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글만 쓰게 된다”는 자각 끝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으나 50번 넘는 공모전에서 탈락했다. 생계를 위해 컨설팅 회사와 공공기관을 전전하면서도 그는 새벽마다 원고를 붙들었다. “매일 새벽 5시에 글을 쓰고 9시에 출근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충만했다.” 결국 2016년 등단했고,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주목받으며 한국 문학의 전면에 섰다.
그러나 영광 뒤에는 대가가 있었다. 과로와 불면으로 건강이 무너졌다. 그는 “창작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알았다”며 “행복하다고 믿었던 시절의 생활들이 사실은 미래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경험은 ‘지속 가능한 창작’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박 작가는 글쓰기를 “나를 살린 노동”이라고 규정했다. 심리학 연구를 인용하며 “10년 뒤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현재의 행복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형의 나를 돌보고 기록하는 글쓰기가 그 방법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 짧은 낮잠이나 티타임 같은 루틴을 예로 들며 “사소한 루틴이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고 조언했다.
질의응답에서는 작업론과 창작 태도가 이어졌다. 필사(筆寫) 열풍에 대해 그는 “필사는 손목 운동일 뿐”이라며 “좋아하는 문장을 여러 번 읽고, 직접 써보고 고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문체에 대해서는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끝없이 고친다”며 “나는 친절한 작가”라고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찌질하다’는 평가에는 “인간의 욕망이란 필연적으로 찌질하다. 그 진실함 때문에 독자들이 위로를 받는다”고 답했다. 창작의 출발점에 대해서는 “인물·장면·문장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플롯으로 세워내는 힘은 결국 손으로 수련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쓰기의 본질을 이렇게 압축했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취미로 삼길 바라지만, 프로로 살아남고 싶다면 팔자 좋을 거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인풋 없이 아웃풋은 없다.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아르떼 살롱은 지난 7월 배우이자 화가 박신양과 미술사학자 안현배로 첫 무대를 열었다. 다음 달에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무용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발레 이야기’를 풀어내며, 11월에는 사진작가 구본창, 12월에는 성수영 미술전문기자가 강연을 이어간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