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양국 정치인들이 수시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진정한 반성과 서로의 이해가 없기 때문 아닐까. 이러한 측면에서 신간 ‘줄리아 오다(장상인 지음)’는 433년 전에 벌어졌던 임진왜란을 무대로 했지만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붙잡혀 간 한 여자 아이, 아니 한 여인의 애틋하면서도 기막힌 삶이 눈물처럼 배어 있다. 어쩌면 한국 작가가 쓴 일본 역사 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일본의 역사를 세세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줄리아 오다’는 일본에서 소설, 영화, 뮤지컬 등에 의해서 잘 알려져 있으나,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로 들린다.
“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중을 들며 봉사하고 있는 여성 가운데 조선인 천주교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인 쥬스타를 모셨으며, 대단히 깊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신앙생활은 속세를 떠난 수도자에 버금가는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본문 156쪽)
예수회 소속의 히람 신부가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 에수회 총장에게 보낸 편지다. 1606년 3월 10일 발신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 같은 예수회의 코우로스(Mates de Couros) 신부의 서한도 같은 맥락에서 보고되었다.
“조선의 젊은 여인 줄리아는 사려와 분별력이 있는 드물게 보는 인물로 장군으로부터 중하게 여겨졌고, 궁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1613년 1월 12일 발신된 내용이다(본문 157쪽).
“하느님은 조선에서 태어난 믿음이 없는 저를 인도하시고, 고니시 유키나가를 통해서 일본에 오게 하시고, 유일한 구원이 있는 성스러운 계율과 당신의 소식을 알게 하시는 커다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지상의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늘의 왕인 주님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본문 170쪽).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당당히 맞선 줄리아 오다는 조선의 꽃이자 하느님의 자녀였고, 신앙심으로 다져진 성녀(聖女)였다.
실존인물 줄리아 오다는 ‘기리스탄(크리스천)을 버리라’는 것과 ‘후궁이 되라’는 이에야스(家康)의 지엄한 명령을 거부하고 도쿄로부터 직선거리로 178km 떨어진 절해고도 고즈시마(神津島)의 열악한 곳에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소설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서 벌어진 애틋하면서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성난 파도처럼 세차게 일렁인다.
‘역사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는 항상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간 ‘줄리아 오다’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처해진 운명적인 길을 걷는다. 문제는 그 길속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자 장상인은 200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리아 오다’가 걸었던 길속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신앙인으로써, 정절 여(女)로써, 자신과 종교를 굳건하게 지킨 조선의 여인의 모범적인 표상(表象)을 찾았다.
또 하나, 일본을 천하 통일한 최고의 권력자이면서도 ‘젊은 여인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것이 다소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얼마든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제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행동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평양성에서 후퇴하면서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양녀로 키웠고, 그녀에게 신앙심을 키워주었으며, 종교를 위해서 스스로 자결을 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신앙심도 달라 보인다.
저자는 ‘두 사람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털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이 있어서다.
이 한 권의 소설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과거의 아픔을 털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하나의 좌표가 될 것이다.
저자 장상인(1950)은 동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언론대학원 석사,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ROTC 출신으로 논산훈련소 교관을 마치고, 1976년 한국전력,·1981년 대우건설,·2002년 팬택에 입사해서 주로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대우건설 재직시절 철옹성 일본 건설 시장의 문을 열면서부터 일본의 기업은 물론 정계·언론계 등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두터운 인맥을 형성했다.
2008년 스스로 창업한 JSI미디어(부동산신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경희대와 인하대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이자 수필가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저서로 홍보 머리로 뛰어라, 현해탄 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일본인과 공저), 커피 한 잔으로 떠나는 세계 여행, 나는 코로나를 이렇게 극복했다 등이 있다.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