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간 7.8조원 주선…인프라 금융 '큰손'된 신한은행 [딥파이낸스]

입력 2025-10-09 16:41
수정 2025-10-09 16:47

불과 몇 년 전까지 국내 인프라 금융 시장에서 시중은행은 자금 조달 창구에 머물렀다.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건설사가 주도했고 은행은 대출과 일부 투자만 제공했다.

최근 신한은행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노선의 금융약정을 마무리하면서 판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이 사업 초기부터 자본을 투입하고 이해관계자 협상을 이끌어가는 등 인프라 금융의 핵심 설계자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철도부터 항만까지 금융주선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2019년부터 참여한 국내 주요 인프라 사업의 금융자문 및 주선 규모는 7조8000억원에 달한다. GTX A·B, 부산항 신항 2·3단계, 인천김포 고속도로(재조달) 등은 신한은행이 대표로 금융을 주선한 사업들이다.

신한은행이 인프라 금융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낸 건 2019년 GTX-A 사업부터다. 국내에서 금융기관(FI)이 금융주선을 성사시킨 첫 사례다. 해외에서는 금융사가 인프라 사업 초기 단계부터 구조를 설계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건설사(CI)가 사업 구조를 짜고 협상 테이블을 좌우해 왔다. 인프라 사업은 보통 30~40년 장기 프로젝트라서 경험이 적은 국내 은행 입장에서는 장기 수요 예측과 운영 리스크까지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오히려 여기서 기회를 봤다. 처음부터 사업 구조 설계와 자본 투입에 참여하면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 미쳤다고 하는 시선도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은행이 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은행 역할 커질 것”최근 금융주선이 마무리된 GTX-B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GTX-A의 성공을 등에 업은 신한은행은 앞선 GTX-C 사업 입찰에도 참여했지만,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후 대우건설과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컨소시엄을 꾸렸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 역할을 분담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이 자금 조달과 투자자 유치,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대우건설은 시공과 사업 추진을 맡는 구조였다. 이른바 ‘FI-CI 하이브리드’ 모델이 만들어졌다.

자금 조달에 2년 이상 걸리는 동안 글로벌 투자사 맥쿼리가 발을 빼면서 어려움이 따랐다. 공사 책임을 두고 대우건설 측과 갈등을 겪으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은 적도 있다. GTX-C 사업이 공사비 급등으로 삐걱대자 GTX-B 자금 조달에도 불똥이 튀었다. 그러는 동안 신한은행은 대우건설과 역할을 분담하며 금융 구조를 다듬었다. 참여 기관의 이해 관계를 정교하게 조율하며 결국 3조5842억원 규모의 금융약정을 성사시켰다.

신한은행은 이번 성과를 계기로 철도·도로·항만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인프라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또 정부의 고시 사업에 기대지 않고 직접 신규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등 참여 방식을 다변화하기로 했다.

향후 정부의 민간투자 확대 정책과 맞물리면서 인프라 금융에서 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 관행에 제동을 건 만큼 은행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인프라 금융은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