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이 확정되면서 두 달 가까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협상이 진전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다음달 29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양국 관세협상 타결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중 간 해빙무드가 조성되면서 미·중 관세협상이 타결되면 우리 측이 더 다급해질 수 있어서다. 정부 관계자는 “미·중 관세협상이 한국보다 먼저 타결되면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더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상호관세와 자동차 품목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펀드 운용 방식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25%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 운용 방식에 합의한 일본은 지난 16일부터 자동차와 부품에 15%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한국의 관세 우위가 역전되며 8월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15.2% 줄어들어 6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올 2분기 한국 대미 수출 관세액이 33억달러로 트럼프 2기 출범 전인 작년 4분기에 비해 47.1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큰 10개국 가운데 관세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여기에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수용할 경우 초래될 부작용도 상당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 펀드 규모는 지난해 한국 제조업의 명목 설비투자(145조4398억원)의 3.4배 규모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 미국에 직접 투자한 총투자금(258억달러)의 13.5배에 달한다. 이런 대미 투자가 추진되면 국내 설비 투자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내 주요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3500억달러를 전액 국내에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최대 35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한은의 2020년 산업연관표상 투자 고용유발계수(10억원당 7.2명)를 적용한 분석 결과다.
일각에선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기 위해선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60조1항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국회가 갖는다’고 규정한다.
정영효/김익환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