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의 작은 키에도 한때 230m를 넘나드는 장타를 친 이다연에게는 ‘작은 거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에게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바로 ‘오뚝이’다. 신인 때부터 잦은 부상에 허덕이며 두 차례 큰 수술을 받는 시련을 겪고도 어김없이 부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부상은 이다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작년엔 허리 부상으로 샷이 흔들려 우승 없는 한 해를 보냈고, 올해도 시즌 초 교통사고를 당해 오랜 시간 후유증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앞선 통산 8승 중 메이저 대회에서만 3승을 올릴 정도로 큰 대회에 강한 그가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우승상금 2억7000만원·총상금 15억원)에서 우승했다. 특히 2년 전처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간판 이민지(호주)를 연장 승부 끝에 꺾고 우승해 기쁨이 배가됐다. ◇이민지와 ‘리턴 매치’이다연은 21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 미국·유럽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로 이민지와 동타를 이룬 그는 18번홀(파4)에서 이어진 두 번의 연장 끝에 먼저 파를 기록해 우승했다. 이민지는 짧은 파퍼트를 놓쳐 2년 전 복수에 실패했다.
2023년 이 대회 우승자인 이다연은 2년 만에 트로피를 찾아오며 시즌 첫 승, 통산 9승째를 올렸다. 우승상금 2억7000만원을 더한 이다연은 지난주 상금랭킹 14위에서 7계단 뛰어올라 7위가 됐다. 대상 포인트 부문에서도 9위(283점)를 차지해 주요 개인 타이틀 경쟁에 뛰어든 이다연은 “올해를 준비하며 우승 하나를 보고 달려왔는데, 도와준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어 기쁘다”며 “다음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날 3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이다연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전반에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묶어 타수를 지킨 이다연은 후반 들어 날카로운 샷이 진가를 드러냈다.
14번홀(파3)에서 티샷을 핀과 2m 남짓 거리에 붙여 버디를 잡았고, 이어진 14번홀(파4)에서도 2.3m 버디를 떨어뜨려 기세를 이어갔다. 단독 선두를 달리던 유현조가 15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이다연은 단숨에 1타 차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이다연은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민지가 마지막 17번홀(파3)과 18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단독 선두 자리로 올랐지만, 이다연도 17번홀에서 10m 버디퍼트를 떨어뜨려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두 차례 연장에서도 침착하게 파를 지킨 이다연은 퍼팅 실수로 무너진 이민지를 제치고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청라의 여왕’도 그의 차지가 됐다. 베어즈베스트 청라GC는 이름 그대로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설계한 세계 290개 골프장 중 최고의 홀을 추려 옮겨놓은 곳이다. 2012년 미국·유럽·오스트랄라시아 등의 3개 코스 27개 홀 규모로 문을 연 이곳에서 2019년 한국여자오픈(미국·오스트랄라시아), 2023년과 2025년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미국·유럽)을 제패한 이다연은 KPGA투어의 이태훈(캐나다·2승)을 제치고 코스 최다승(3승)의 주인이 됐다. ◇이민지, 또 연장에서 고배LPGA투어 통산 11승을 자랑하는 여자골프 세계랭킹 4위 이민지는 또다시 KLPGA투어 첫 승의 기회를 놓쳤다. 앞서 이 대회에 다섯 번 출전해 세 번이나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세계랭킹이 한참 뒤지는 KLPGA투어 선수들에게 연달아 가로막히는 바람에 우승이 없었다. 특히 이민지는 이 대회에서 세 차례(2021·2023·2025) 연장에 갔지만 모두 패해 커리어 목표 중 하나인 ‘메인 후원사 대회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