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맨더빌과 스미스, 돈 풀기와 생산적 노동

입력 2025-09-19 17:06
수정 2025-09-20 00:08
돈이 돌기만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친 대표적 인물이 버나드 맨더빌이다. 그는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서 ‘사적 악이 공적 이득이다’라는 명제를 입증한다며 극단적인 예들을 서슴없이 들었다. 절도가 생업인 자들은 훔친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다. 술을 파는 주점 주인은 이들이 술값으로 내는 돈을 어떻게 구했는지 묻지 않는다. 화폐가 위조된 것이 아닌지만 확인할 따름이다.

도둑들이 마시는 맥주를 양조하는 도매업자는 소매주점 주인에게 받은 납품대금의 출처가 무엇인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돈으로 양조업자는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더 심한 예도 있다. 노상강도가 행인에게서 돈을 강탈한다. 그는 그 돈을 자기 애인에게 준다. 애인은 그 돈을 비싼 옷, 장신구, 구두를 사는 데 쓴다. 그 덕에 옷 장사, 장신구 장사, 구두 장사 등 여럿이 수익을 올린다. 이렇게 돈이 돌며 경제를 살리니 얼마나 좋은가. 맨더빌의 저서는 그의 생전에 거센 비난의 표적이 됐다. 책 판매를 법으로 막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현실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적지 않았다.

맨더빌에 대한 비판이나 옹호는 이후 세대까지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낸 <국부론>에서 맨더빌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지만 돈이 돌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여러 곳에서 비판했다. 이 책의 2권 3장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검약하는 개인이 저축한 돈은 은행을 통해 생산적 노동을 고용하는 자금이 된다. 반면 낭비하는 개인은 유흥과 사치에 돈을 쓰기에 생산적 노동으로 가야 할 자금을 줄어들게 하고, 그만큼 국가 경제는 가난해진다.

낭비하는 자들도 돈을 풀고 있고, 그렇게 돈이 돌면 좋은 것 아닌가? 아니다. 화폐는 교환의 수단일 뿐 그 자체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제조업에 투입되는 생산적 노동을 통해 부가가치가 만들어질 때 국가의 부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늘어난 가치에 맞춰 화폐의 양도 증가한다. 생산적 노동을 장려하지 않은 채 화폐의 양만 늘리면 돈의 가치만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신대륙 식민지에서 화폐의 재료인 은을 수입하고, 거기에만 의존하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빈곤의 사슬에서 못 벗어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맨더빌과 스미스가 대립하는 주장을 펼친 배경은 자유 시장경제가 형성되던 18세기 영국이다. 그러나 돈을 풀고 돈이 돌기만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은 우리 시대에도 자주 접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주장이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나라 대열 문턱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돈을 풀어서가 아니라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생산적 노동에 매진한 덕분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맨더빌과 스미스의 대립이 한낱 다른 나라 옛이야기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