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英 국빈 방문… 런던서 수천 명 반대 시위

입력 2025-09-18 15:05
수정 2025-09-18 15:3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두 번째로 국빈 방문한 가운데, 런던 도심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그의 정책과 정치적 행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빈 만찬에서 미국과 영국 간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며 이번 국빈 방문이 “내 인생 최고의 영예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런던 곳곳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는 이와 대조적 풍경을 이뤘다.

영국 정부는 17일(현지 시각)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 의전으로 트럼프를 성대히 맞이했다. 외국 정상으로 두 차례 국빈 초청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윈저성에서 열린 만찬에서 “미국과 영국 간 유대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영원하다”며 “대체할 수 없고 깨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런던 도심과 윈저성 인근에서는 약 5,000명이 참여한 시위가 열렸다. 50개 이상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참여한 ‘스톱 트럼프 연맹’(Stop Trump Coalition)은 포틀랜드 플레이스에서 출발해 의회 광장까지 행진하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시위대에는 기후 운동가, 인종차별 반대 단체,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 등이 포함됐다.

일부 시위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여성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된 앤드루 테이트로 분장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전범자’, ‘트럼프를 지지하는 살인자’, ‘트럼프를 지지하는 여성 혐오자’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팔레스타인 연대 캠페인의 벤 자말 이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여기 모인 데에는 광범위한 이유가 있다”며 “트럼프가 대표하는 정치-인종차별, 분열, 증오, 환경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우리가 지지하는 가치와 완전히 반대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시위는 윈저성 앞에서도 이어졌다. 일부 단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3년 기소 당시 머그샷과 미국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다룬 보도 영상을 성벽에 투사했다. 경찰은 퍼포먼스를 기획한 4명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최근 영국 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61%가 트럼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런던 시장 사이크 칸은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분열적이고 극우적인 정치의 불길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런던 시민들에게 ‘공포와 분열의 정치’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초청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도 이어졌다. 가디언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이번 방문을 통해 대미 경제협력 강화, 투자 확대, 관세 완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시위 연맹 측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인종차별에 굴복하는 정부는 파시즘의 문을 열 것”이라고 비판하며, “영국 정부도 권위주의 확산에 적극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왕실 역사학자 로버트 레이시는 트럼프 초청 서한에 찰스 3세 국왕의 친필 사인이 담긴 사실을 언급하며 “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은 애초 폐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는 트럼프가 화려한 행사를 평화롭게 즐기도록 두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