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멈춘 PEF…'승계·분배' 둘러싼 세대갈등 폭발

입력 2025-09-22 07:34
수정 2025-09-23 14:00
이 기사는 09월 22일 07:3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도입 20년을 맞은 사모펀드(PEF)가 성숙기에 돌입하면서 각 하우스에서 '분배'와 '승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펀드 조성에서부터 신규 투자, 투자 회수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던 성장기엔 운용사를 키우는 일이 분배 문제보다 앞서 있었지만, PEF 시장의 역동성까지 떨어지자 곪아있던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PEF 업계의 공통된 고민은 한창 일해야 할 ‘낀 세대’의 이탈이다. 토종 PEF의 경우, 보통 1950년대 후반~1970년대 초중반 출생자를 1세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후반 출생자를 2세대, 1990년대생 이후는 주니어 인력으로 분류한다. 초기 펀드들이 청산되면서 성과보수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1세대와, 꿈을 안고 입사한 3세대 사이에서 ‘제 몫’을 요구하는 2세대 핵심 인력을 어떻게 붙잡느냐가 각 하우스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허리급 인사 잡아라'…각 PEF들의 고민21일 PEF 업계에 따르면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의 이귀현 전무의 퇴사가 PE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17년 앵커PE에 합류한 이 전무는 앵커PE 창업 멤버로 주로 미드캡 분야 투자를 총괄해온 인물로 꼽힌다. 앵커PE의 차기 한국 대표 자리까지 보장받았지만 퇴사 후 신생 PEF를 설립했다. 올해 위세욱 부대표의 퇴사에 이어 또 다시 '키맨'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인력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명확한 이탈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앵커PE의 독특한 분배 구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앵커PE는 포트폴리오 매각에 성공하면 성과보수 분배 과정에서 해당 거래를 발굴하고 투자 및 관리한 인력이 퇴사했더라도 상당부분을 보장해주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골드만삭스PIA 출신으로 앵커PE를 설립한 안상균 대표가 글로벌 PE 문화를 그대로 도입했다. 이 때문에 지오영 등 기존 포트폴리오에서 조단위 차익을 거둔 대박을 거뒀더라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성과보수가 퇴사한 후 다른 PEF에 옮겨간 인사들에게 배분됐다.

초반에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려는 '당근' 역할을 했지만 정작 현재 남아있는 허리급 인사들에겐 "열심히 팔아줘야 전임자들이 다 가져간다"는 허탈감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앵커PE 인력 사이에선 "남 좋은 일 시킬 일 있나"란 분위기와 "남아있는 실탄으로 뭐라도 뿌려놓고 떠나자"는 분위기가 양분돼 있다는 후문이다.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초유의 소송전까지 벌어진 UCK파트너스도 허리급 인력들의 대거 이탈을 겪었다. 조단위 차익을 거둔 '메디트' 대박으로 떨어진 성과보수를 둘러싼 분배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란 시각이 짙다. 성과보수가 소수 파트너들에 집중되다보니 일부 인력 사이에선 "운용사 역사상 초대박을 거뒀는 데도 떨어지는 몫이 이정도면, 더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MBK·한앤코도 승계는 '금기어'…토종 PEF도 '공염불'만낀 세대들의 '분배' 문제는 결국 1세대들의 이탈 이후에도 운용사의 위상이 이어질 지에 대한 '승계' 고민으로도 이어진다. 국내 대표 PEF인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등 글로벌 반열에 오른 운용사들은 물론 IMM, 스카이레이크, 스틱인베스트먼트, JKL파트너스 등 토종 PEF 창업자들은 이미 거부 반열에 올랐지만 승계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한중일 바이아웃 펀드로 영역을 넓혀오던 MBK파트너스는 한국앤컴퍼니에서 고려아연에 이르기까지 김병주 회장 주도의 변신이 이뤄지면서 인력들의 동요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김 회장과 일부 핵심 파트너들은 MBK파트너스가 본격적으로 재벌 공격에 나서기 이전 다이얼캐피탈에 구주를 매각하면서 은퇴 자금을 챙겼으니 '자아실현'에 나설 여유가 있지만, 아직 정산이 남아있는 후배들은 착잡할 것"이란 관전평이 나왔다.

한앤컴퍼니의 주니어급 인력들은 결이 다른 고민에 빠져있다. 한상원 대표가 지분과 성과보수를 쥐고 있는 가운데 연봉과 성과급으로 막대한 보상을 안겨주는 문화가 이어져왔지만 이런 구조로 우수 인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딜 소싱에서 투자 검토와 결정 등 모든 회의를 파트너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보수적인 회사 문화에 대한 내부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다른 PEF에선 비슷한 상무급 연차의 인력들이 투자를 직접 주도하는 일이 많다보니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까진 출자자(LP)들에게 창업자 등 1세대 인사들의 역량이 곧 운용사의 역량으로 이어지면서 굳건한 권력 기반이 돼왔다. 이같은 의사결정 체제가 얼마나 유지될 지에 대한 의구심은 지속되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김 회장이 주도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홈플러스 사태 해결 방식을 두곤 사내에서도 여러 이견이 오갔고, 핵심 멤버가 이탈하기도 했다. 한앤컴퍼니에선 2021년 한온시스템 인수에 주당 1만4000원을 제시한 인수 측 제안을 투심위에서 거부하면서 마지막 회수 기회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IMM 스카이레이크 스틱 JKL 등 토종 운용사들도 고민이 깊다. 조단위 펀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후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대거 파격 승진에 나서거나 외부 인력을 영입하며 덩치는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단기적인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행보였지만 되려 역피라미드 형태의 인력구조가 굳혀졌다. 정작 바쁘게 일해야할 주니어 입장에선 1세대들은 승계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올드보이들만 대거 늘면서 실력있는 순으로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PEF 공정가격 산출도 막막…뚜렷한 해법 찾기 어려워한국보다 역사가 오래된 글로벌 PEF의 경우 분배와 승계 문제가 일찌감치 운용사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운용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해법도 마련했다. 주식을 시장에서 팔면서 은퇴하고 후계자들이 샤이닝 보너스 등으로 지분을 시장에서 매입하는 식이다. 일부 글로벌 VC와 PEF들은 핵심 인력들을 영입하거나 승진시키면서 액면가 혹은 할인된 가격에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경우도 빈번하다.

국내에선 여전히 요원한 일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PEF가 여론의 질타 대상이 되면서 상장은 꿈꾸지 않을 뿐더러 '시가'에 대한 이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PEF 관계자는 "이미 기업가치만 14조원을 찍은 MBK파트너스에서 보듯 1세대들이 정해놓은 밸류에이션을 후배들은 맞춰줄 수도 없고 그 가치에 동의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토종PEF 대표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액면가 수준으로 우리사주에 증여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인력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대부분 구두에 그치고 있다. 증여 과정에서 발생할 막대한 개인 세금을 감당할 수 없다며 발언을 뒤집는 대표들도 있다.

일각에선 크레딧본부와 그로쓰본부, 부동산 및 인프라 등 PEF들이 투자전략을 대폭 늘리는 전략을 펴는 것도 허리급 인력들의 불만과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핵심 인력에게 일정 지분과 투자 전권을 보장하며 성과를 나누며 이를 통한 자연스런 승계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유동성 여유가 넘치던 시기엔 LP들도 전략 다변화에 귀를 기울였지만, 불확실성이 커진 최근엔 "잘하는 전략에 집중하라"는 보수적 기조가 짙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수 인력들이 실리를 택하는 기조가 번지면서 이를 기회로 삼으려는 운용사들도 관측되고 있다. 프리미어파트너스는 최근 종업원 지주사 방식의 운영을 강조하면서 인력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형식적으로 나눠있던 캐리 분배도 입사 이전부터 거래 발굴, 투자 검토, 관리 등 세분화하고 일정 비중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명확한 분배 규정은 없지만 국내에서 캐리 분배 문제가 가장 '화끈한' 곳으로 알려진 글랜우드PE도 최선호 하우스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