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조선·전력·건설' 삼각축 성장…지배구조 개편으로 재평가[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입력 2025-09-22 08:52
수정 2025-09-22 08:53

HD현대가 핵심 자회사의 실적 성장에 힘입어 지주사로서의 수익성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HD현대의 성장 기반은 조선 부문의 HD한국조선해양(이하 한조양), 전력기기 부문의 HD현대일렉트릭, 건설기계 부문의 HD현대사이트솔루션 등 3대 산업군으로 구성된다. 이들 산업은 모두 업황 호조 사이클에 진입했다.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HD현대는 이들의 실적 성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지배구조 개편 수혜가 더해지며 증권가에선 HD현대가 ‘지배구조의 최종 수혜를 받는 성장주’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회사 실적 상승·합병 시너지로 수익 확대

HD현대는 주요 자회사들로부터 배당수익, 브랜드 로열티, 임대수익 등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수익을 거둔다. 이 중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은 배당과 로열티 수익 증가로 직결된다. 특히 전력기기, 조선·방산, 건설기계 부문의 업황이 상승 사이클에 진입하면서 향후 3개년 실적 추정치도 지속 상향되고 있다. 증권가는 HD현대의 2025년 연결기준 EPS 성장률을 99.2%, 2026년 20.9%로 추산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부문 실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력기기, 건설기계 부문의 성장세가 이를 상쇄하고 있다. 최근 합병 및 지분 구조 변경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는 향후 추정치에 추가 반영될 예정이어서 실적 전망은 더욱 밝다는 평가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조선의 합병도 HD현대에 호재라는 분석이 많다. HD현대중공업 이사회는 지난 8월 HD현대미포조선을 흡수합병하기로 의결했다. 존속법인은 HD현대중공업이다. 합병은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이뤄진다. HD현대미포 보통주 1주당 HD현대중공업 보통주 0.4059146주가 배정될 예정이다.

이번 합병으로 최대주주인 한조양의 지분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 기존에는 HD현대중공업 74.18%, HD현대미포 4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합병 이후에는 통합법인인 HD현대중공업 지분 69.29%를 보유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지분율이 4.89% 희석되지만 HD현대미포에 대한 지분 가치는 26.69%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업계에선 이번 합병을 국내 조선업 구조 재편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적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합병이 완료되면 HD현대중공업은 해양, 상선, 방산 등 조선 부문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체제로 거듭날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조선업 경쟁력 강화와 합병 시너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합병 발표 이후 한조양의 시가총액은 약 14% 상승했다. 한조양 지분 35.05%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HD현대도 기업가치 상승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한조양의 기업가치 상승은 곧 HD현대의 지분가치와 배당수익 증가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고배당 세제개편 수혜 기대

HD현대는 정부의 세제개편 수혜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주사 수익원의 핵심인 배당금 확대에 적극적이어서다. HD현대는 별도 기준 70% 이상의 배당성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 1회 배당이 아닌 분기별 배당을 실시한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고배당 기업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자회사들의 배당성향이 높아지고 HD현대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고배당 상장사로부터 발생한 배당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로 기업의 배당 확대와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세율은 최대 35%로 설정됐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HD현대는 고배당 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수익 확대의 중요한 축인 브랜드 로열티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HD현대는 지주사 브랜드 사용료를 매출액 기준 0.05%(5bps) 수준으로 받고 있다. 국내 주요 지주사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이다. 3년 계약 만료 시점이 2025년으로 다가오면서 회계법인의 감정평가 등을 거쳐 요율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SK나 LG처럼 0.1~0.5% 수준으로 상향 조정될 경우 HD현대의 고정 수익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정부의 또 다른 기업가치 제고 정책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HD현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지난 7월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과거에는 자사주를 매입하고도 소각하지 않은 채 경영권 방어나 다른 목적에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새 법안은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증권가는 이런 변화가 자사주를 다수 보유한 지주사들에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HD현대 역시 높은 자사주 비율을 보유하고 있어 밸류업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산가치 28조…성장주로 재평가

일각에선 HD현대가 보유 중인 상장 및 비상장 자회사들의 가치를 감안할 때 현재의 시가총액이 여전히 저평가됐다고 보고 있다. HD현대는 상장 자회사로 한국조선해양(지분율 35.1%), 현대건설기계(36.9%), 현대인프라코어(34.2%), 현대일렉트릭(36.7%), 현대마린솔루션(55.3%) 등을 보유 중이다. 이들의 공정가치는 총 25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비상장 자회사로는 현대오일뱅크(지분율 73.9%)와 현대로보틱스(90.0%) 등이 있다. 이들의 기업가치는 각각 2조4000억원, 3000억원으로 비상장 부문 전체 가치는 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상장 및 비상장 자회사 가치를 모두 합산하면 총 28조여 원으로 HD현대의 현재 시가총액(약 12조8000억원)을 두 배 이상 상회한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HD현대는 지주사로서 보유 자산만으로도 안전마진이 충분하다”며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9.8배, 주가순자산비율(P/B)은 1.2배에 불과해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흥국증권은 HD현대의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상향한 19만원으로 제시했다. LS증권은 지주사 할인율 50%를 반영해 목표주가를 29만7000원으로 높였다.

HD현대를 ‘저평가 자산주’에서 ‘고성장 지주사’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 연구원은 “향후 HD현대로보틱스 상장과 손자회사 간 구조조정 등 추가 변화가 이뤄질 경우 HD현대의 기업가치는 더욱 부각될 전망”이라며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 등 정부의 주주친화 정책이 더해질 경우 지주사 프리미엄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