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월 세제개편안에서 제외한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재검토하고 나선 것은 대미 관세 협상 장기화로 피해가 커진 국내 기업을 간접적으로라도 지원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은 세제 혜택을 받으면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관세 피해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정액제’ 생산세제 혜택 유력
17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생산량에 비례해 법인세를 일부 깎아주는 생산세액공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위해 ‘국내 생산기반 확보를 위한 세제 지원 방안 검토’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의원 입법 등으로 올해 생산분부터 세제 혜택을 주기 위해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에 연구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세액공제는 크게 생산량당 일정 단가를 깎아주는 방법(정액제)과 생산비용 중 일정 비율을 깎아주는 방법(정률제)으로 구분된다. 정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두 가지 중 적합한 공제 방식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처 안팎에선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예컨대 A 자동차회사가 올해 전기차를 15만 대 생산해 국내에 판매할 경우 일정 단가를 곱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이다. 단가가 100만원으로 결정된다면 1500억원, 200만원이면 3000억원을 감면한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내수 판매량은 14만1782대였다.◇美 관세 피해 현실화에 논의 탄력정부는 현재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이나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지만 생산세액공제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는 매년 투자를 벌여 세제 혜택을 받는 데 한계가 있어 투자보다 생산에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가 더 실효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이 충남 아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아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도입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세수 부족과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 등 통상 마찰 가능성을 이유로 내년도 세제개편안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은 것은 관세 피해가 현실화하면서다. 미국은 지난 16일부터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기존 27.5%에서 15%로 낮췄지만 한국산 자동차에는 여전히 25% 관세를 매기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관세를 10%포인트나 더 맞으며 미국 시장에서 일본 차와 경쟁해야 한다.
한국 수출의 22%를 차지하는 반도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차보다 반도체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이미 주요 물품의 생산량에 비례해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며 “생산세액공제가 도입된다면 관세 충격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통상마찰 등은 변수다만 실제 정책 시행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생산세액공제를 국내 생산 및 판매분에만 적용하면 기업이 받는 혜택이 관세 피해액보다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의 국내 판매 비중은 전체 판매 물량 가운데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적자를 보고 있는 배터리 기업은 법인세를 내지 않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경제계에선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보조금을 지급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통상 마찰도 문제다. 정부에서는 해외 판매분에까지 세제 혜택을 주면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기업의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다른 국가에서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어 지원 대상을 한 번에 늘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남정민/김형규/김리안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