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너무 그리워요"…중국 MZ들에 퍼지는 '서울병' [트렌드+]

입력 2025-09-15 19:29
수정 2025-09-17 13:53
"한국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서울병이 더 심해졌다."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친절에 눈물이 난다."

"한강의 야경과 분위기가 너무 그립다."
서울을 다녀온 뒤 한국을 그리워하며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울병(首?病)'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단순한 여행 후유증을 넘어, 한국 문화와 사회를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동경의 시선이 담겨 있어 파급력이 적지 않다.

서울병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니다. 서울에서 유학하거나 여행을 마친 중국 MZ세대가 귀국 후에도 서울의 분위기와 추억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다. 예쁜 카페, 드라마 같은 거리 풍경, 아이돌 공연, 쇼핑, 야경과 한강 감성 등 강렬한 경험에 매료돼 돌아간 일상이 밋밋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뜻한다.

과거에는 한국을 깎아내리는 부정적 맥락에서 쓰였으나, 최근에는 "중국은 한국에게 배워야 한다", "적은 자원으로 풍부한 문화를 만든 나라"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확산하고 있다.◇좋아요 78만…'서울병이 심해졌다' 영상 중국서 인기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音)에서 '서울병' 해시태그 영상은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겼다. 서울 도심의 야경을 담은 영상에는 "당신은 이런 여행을 한 적 있냐,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시작됐다. 아마 이것이 서울병의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글이 달렸다.

한강 야경이나 남산타워, 롯데타워 드라이브 영상을 본 네티즌들도 "사람이 많고 교통체증에 물가도 비싸지만, 분위기는 중독성이 있다", "서울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고 후기를 남겼다.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놀면 놀수록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가면 도로 표시선도 어느 나라보다 선명하다", "서울병이 걸리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서울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은 확실히 활기찬 느낌을 준다" 등 긍정적인 경험담이 이어졌다.

'서울병이 정말 심해졌다'는 제목의 영상에는 78만 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영상 속 댓글에는 "아이돌 콘서트장에서 저혈당이 온 나에게 한국인이 초콜릿과 과자를 줬다", "한국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서울병이 더 심해졌다", "지하철을 잘못 탔더니 한국 여성이 역까지 데려다줬다. 선진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한국인은 대부분 예의를 지켜 길을 건너고 언제나 차가 양보한다"는 구체적인 체험담도 공유됐다.◇'서울병'에 눈물 흘리는 中 청년들…한국 여론은 엇갈려
한국의 한 유튜버가 제작한 '서울병' 영상에는 삼겹살집에서 현지인에게 선물을 받은 중국 여성, 귀국 비행기에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 지하철에서 눈물을 닦는 모습 등이 담겼다.

영상 속 한 중국인은 "물질적 자원이 부족하고 출세의 길이 좁은 사회에서도 한국인들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찾아낸다. 적은 자원으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점은 중국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이미 중국을 넘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소비되고 있으며, 서울은 글로벌 MZ세대가 닮고 싶어 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인들은 SNS에 "중국에 돌아가도 한국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자국 현실과 한국의 자유와 친절함을 비교하면 상사병 같은 감정이 든다"는 글을 남기며 서울병을 '현대판 향수병'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 누리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중국인 친구들이 서울병 얘기 많이 한다", "일부러 서울병 걸리려고 서울 간다는 애도 있다", "한국 오면 유학 시절 생각나서 너무 좋다고 한다"는 경험담이 있는가 하면, "제발 오지 마라. 중국과 엮여서 좋은 꼴 본 적 없다",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거다", "곧 무비자로 몰려온다는데 걱정된다"는 반감도 적지 않다.

"어차피 오는 거라면 예의만 지켜라, 그러면 대부분 친절하게 대해줄 것", "와서 돈만 쓰고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함께 나오고 있다.◇정부, 29일부터 중국 단체관광 무비자 허용서울병이 뜨거운 화제가 되는 가운데, 정부가 오는 29일부터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여론은 또다시 들끓고 있다. 일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지난달 18일 올라온 "중국 단체관광 무비자 입국 허용을 즉각 폐지하고 치쿤구니야 감염 모기 유입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청원이 이날 기준 3만9831명의 동의를 얻었다.

회부 요건인 5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공개 4주 만에 수만 명이 동참하며 논란은 확산일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카페 등에도 "중국 무비자 반대"라는 제목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며 감염병 유입 우려와 불법체류 문제를 지적했다. 일부 게시물은 특정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표현까지 담고 있어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

갈등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번졌다. 최근 명동 일대에서는 극우 성향 단체의 반중 집회로 관광객 불편이 커지자 상인단체가 경찰에 시위 제한을 요청했고, 경찰은 집회 주최 측에 명동 진입 금지 통고를 내리는 등 충돌 최소화에 나섰다.

한편 관광업계는 이번 무비자 정책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인 입국자는 전년 대비 16.52% 증가해 일본(8.92%), 미국(14.59%)보다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312만8988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6.8% 늘었다. 업계는 무비자 정책과 더불어 다음 달 국경절·중추절 연휴 효과가 겹치면서 중국인 관광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방문 후 만족도 높아…서울을 '힙한 도시'로 인식"전문가들은 서울병 현상을 한국 문화의 매력과 중국 청년 세대의 동경심이 맞물린 결과로 본다.

김태연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중국 젊은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뉴미디어 콘텐츠에서 서울을 자주 보면서 자연스럽게 동경심을 키워왔다"며 "서울이 글로벌 관광지로 각광받는 것도 큰 요인이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교류가 줄었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한국 문화가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히 지금 중국의 젊은 부모 세대는 한류 1세대다. 과거 동대문에 와서 쇼핑하던 기억이 있는 세대라 한국 문화에 대해 친근함이 몸에 배어 있다"며 "그들의 자녀인 MZ세대는 이런 부모 세대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SNS에서 본 서울 풍경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국 방문 후 만족도가 높고, 서울을 '힙한 도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최근 서울병이라는 표현이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퍼지는 것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한국 관광이 지닌 브랜드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중국의 국경절, 중추절 연휴와 맞물려 무비자 입국 정책까지 시행되면 중국인 관광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