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명품 브랜드가 잇달아 주얼리와 시계 가격 인상에 나섰다. 소비 침체 영향으로 명품업계의 전반적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주얼리와 시계 수요는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가격을 올려 희소성을 부각하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줄인상 나선 주얼리·시계
14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주얼리·시계 브랜드 까르띠에는 지난 10일부터 국내에서 판매하는 주얼리 제품 가격을 2~5%가량 인상했다. 인기 제품인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스몰’은 585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약 2.5% 올렸고, ‘트리니티링 클래식’은 329만원에서 342만원으로 3.9% 인상했다. 까르띠에의 가격 인상은 올해 들어 세 번째다. 지난 2월과 5월에도 가격을 올렸다.
까르띠에뿐만이 아니다. 리치몬트그룹의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는 15일부터 가격을 인상한다. 웨딩밴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도 이달부터 가격을 5~10%가량 인상했다. 프랑스 브랜드 부쉐론도 7월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 가격을 약 6% 올렸다.
주얼리와 시계 브랜드의 잇단 가격 인상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케링 등 글로벌 명품 그룹조차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주저앉으며 ‘럭셔리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LVMH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5% 줄었다. 같은 기간 케링그룹은 핵심 브랜드 구찌의 부진으로 매출이 16%, 이익은 46% 급감했다. ◇가격 올려도 잘 팔려주얼리·시계업계가 설명하는 가격 인상의 표면적 이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관세 부담이다.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대체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금값은 지난 12일 트로이온스당 3636.9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4.7% 급등했다. 연초(2658.9달러)보다도 36.7% 치솟았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스위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고급 시계·주얼리 제품에 최고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공비와 인건비도 꾸준히 상승해 제조 단가가 올라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가격 인상의 이면엔 ‘희소성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가격을 올려야 희소성이 높아지고,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명품 주얼리와 시계는 가격 자체가 브랜드의 위상을 상징한다. 가격 인상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역설적인 효과가 있다.
명품업체들이 주얼리 가격을 올리기 전 수요가 급증해 최근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9월 까르띠에가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기 전 주요 백화점 매장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가격 인상이 예고되자 소비자들이 ‘지금이 제일 싸다’는 판단으로 서둘러 구매에 나섰다. 브랜드는 단기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국내 백화점의 주얼리·워치 매출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백화점 3사의 매출 모두 올해 1~8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가방이나 의류는 유행에 따라 인기 제품이 빠르게 바뀌지만 주얼리와 시계는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가격이 오를수록 투자 차원에서 매력적이라고 판단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라현진 기자 raral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