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하면 맑고 청아한 음색을 떠올리기 쉽다. 이해원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선선한 가을에 새벽 안개를 머금은 듯한 울림이다. 멋을 부리거나 꾸민 쪽은 아니다. 수수하면서도 듣기 편하다. “슴슴한 평양냉면 맛.” 이해원이 자신의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한 이유다. 맛이 없는 것 중에 제일 맛있다는 요리인 평양냉면과 그녀의 음색은 꽤 닮았다.
오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앞둔 이해원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햇살이 아스팔트를 충분히 데우지 못한 브런치 시간대에 만난 그는 담백했다. “노래에 조미료를 넣지 않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해원을 만나 음악관과 가곡의 매력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한국 가곡 앨범 <흔들리는 꽃>을 발매하고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곡인 ‘봄날’을 가곡 버전으로 불러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던 성악가다.
“가곡,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이해원은 보헤미안을 테마로 삼아 이번 리사이틀의 레퍼토리를 채웠다. 음악가가 자유로이 여러 지역을 유랑하는 느낌을 담아냈다. 1부는 여성 작곡가들이 만든 가곡으로만 채웠다. 클라라 슈만의 ‘6개의 가곡’, 에이미 비치 ‘3개의 브라우닝 가곡’으로 시작해 나디아 불랑제의 ‘엘레지’를 노래한다. 이어 한국 여성 작곡가인 정영주의 ‘고풍의상’으로 마무리한다. 이해원은 “가곡은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게 매력”이라며 “가곡은 나이가 들면서 다가오는 느낌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말했다. “깊이를 알 수록 매력이 더해진다”고.
가곡에 대한 그의 애정은 공연 2부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포레의 ‘3개의 노래’, 장 마르셀 풀랑크의 ‘사랑의 길’, 에릭 사티 ‘당신을 원해요’ 등 낭만적인 프랑스 가곡을 잇따라 소화한다. 이어선 보헤미안이 도버 해협을 건넌다. 영국 작곡가인 벤자민 브리튼의 ‘카바레 송’과 아일랜드 작곡가인 윌리엄 발페의 ‘나는 대리석 궁정에 사는 꿈을 꾸었네’ 등을 부르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이해원은 “1부에선 그간 큰 조명을 받지 못했던 여성 작곡가들을 소개한다면 2부에선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더 강조하겠다”며 “관객들이 편안하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에게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7살 즈음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성악이 일상에 스며들었다고. 이해원은 초등학교 6학년생일 때 ‘예원음악콩쿨’에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다. ‘노래를 업으로 삼을지’를 생각했던 첫 순간이었다. 그는 서울대 음악대학에 입학한 뒤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유학과 코로나19 유행이 겹쳐 사교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했던 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소프라노의 노래방 점수는 몇 점
이해원이 꼽는 자신의 ‘인생 공연’은 색다르다. 작년에 인천에서 열었던 태교 음악회다. “태교 음악회엔 만삭인 임산부들이 많이 오세요. 노래도 태교에 좋은 음악들로 꾸리죠. 배가 부른 산모들이 미래의 아기 아빠와 행복한 표정으로 제 노래를 들어주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해원은 화요일마다 가는 보육원 봉사를 3년째 하고 있을 정도로 아이 사랑이 각별하다. 노래만 부르고 마는 봉사가 아니라 직접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함께한다. 어린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면 자신의 또 다른 내면들을 마주하게 된다고.
이해원은 자신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 가곡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사랑하는 다른 장르에도 열려 있다. 지난해엔 재즈 공연을 하며 음악 영역을 넓혔다. 이해원은 “클래식 음악 장르의 비중을 8, 다른 장르의 비중을 2로 두고 음악을 하고 싶다”며 “팝적인 요소를 가미해 노래하는 크로스 오버에도 많이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K팝도 많이 들어요. K팝 아이돌에게선 얼굴을 쓰는 법을 배워요. 노래하며 얼굴 표정을 잘 살리는 아이돌들이 있어요.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발성의 스타일도 달라지잖아요. 요즘엔 어떤 발성이 유행하는지를 보는 데도 시간을 쓰죠.”
때론 K팝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기도 한다. 친구와 노래방을 가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K팝 곡을 부르기도 한다. 악보 기능을 켜고 바로 부른단다. “처음 접하는 곡을 바로 부르면 기존과는 다른 자신만의 노래가 나온다”고. BTS 봄날의 가곡 버전도 원곡을 듣지 않고 노래방에서 불렀다가 탄생한 작품이다. “코인노래방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도 많아진 지금, 이제 고음만 잘 낸다고 멋있게 여기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호불호가 있는 목소리더라도 그 개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해요.”
문득 소프라노는 노래방에서 몇 점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노래방을 함께 갈 순 없어 물어만 봤다. “100점이 나왔다가 70점이 나오기도 해요. 목소리를 작게 내면 점수가 덜 나오는 것 같았어요. 잔잔한 멜로디에 아름다운 가사가 있는 K팝이 가곡처럼 부르기에 좋았습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