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새벽 석방된 한국인 구금자와 그 가족들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24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날 새벽 3시께 석방을 앞두고 갑자기 이유 설명이나 향후 일정에 대한 안내도 없이 ‘석방이 연기됐다’는 통보를 미국 측이 했기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간 면담 시점이 9일에서 10일로 늦춰지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하루 만에 상황은 180도 다르게 전개됐다. 10일 오전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의 면담이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서 루비오 장관은 갑작스러운 석방 지연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자들이 모두 숙련된 인력이니 미국에 남아 공장 건설을 마치는 게 가능한지’ 확인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병 주고 약 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 측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동맹에 적절한 처우가 아니라는 미국 내 여론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앞서 한·미 양국은 호송 절차에 수갑 등을 포함하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있으면서 버스 운송 및 수갑 착용과 관련해 한국 측 입장이 반영됐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명시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다는 식의 표현 대신 그의 관대하고 이례적인 처사만을 강조했다. 21분가량 이어진 면담의 절반가량은 구금자 문제에 관한 논의였지만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 등도 함께 거론했다. 면담 직전까지도 석방 지연 사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한국 측의 불안을 자극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외교부는 루비오 장관이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언한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기록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구금자들이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자 신청에서 거절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명확한 사유로 거절되면 당사자는 이번 사건 때문인지를 판별하기 힘들다. ESTA와 단기상용(B-1)비자 입국심사가 강화되면 결과적으로 거절이 늘어날 수도 있다. 외교부는 “구체적 사례는 추가로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 판단 여부 불확실이날 석방된 이들은 자진출국 서류에 자신의 불법체류를 인정하는 부분에 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불법체류인데 미국 측에서 봐준 것인지, 애초 불법체류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인지 불분명한 점이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불법체류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고, 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판단할 여건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사업장 22곳의 추가 단속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 측이 비자 기준을 변경하지 않으면 동일한 사유로 단속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 간 비자 협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외교부는 양국 간 실무협의체 신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비자 문제 해결을 미국 측에 요청할 방침이다.
마구잡이식 단속의 후유증은 결코 작지 않을 전망이다. 구금 한국인을 변호하는 현지 변호사에 따르면 구금시설을 관리하는 사설업체 지오(GEO)그룹 내에서는 한국 구금자 입소 과정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잡혀온 구금자를 분류하지 못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워싱턴=이상은/포크스턴=김인엽 특파원/이현일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