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국내 빅테크에 "수익만 추구하면 고객 떠날 것" 경고

입력 2025-09-11 16:05
수정 2025-09-11 16:18

“엔쉬티피케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하는데…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고, 플랫폼 이용자가 이탈하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최우선 과제로 플랫폼 운영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여줄 것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역삼 네이버스퀘어에서 네이버, 카카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5대 빅테크 CEO와 소상공인연합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엔쉬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라는 신조어를 인용하며 빅테크의 ‘맹목적인 수익 추구’ 성향을 경고했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코리 닥터로우가 2022년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2024년 호주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알고리즘이 편향되면 소비자 권익과 후생이 침해된다.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감원 설립 이래 처음으로 빅테크 CEO와 간담회를 가졌다. 금감원에선 이 원장과 디지털·IT 부원장보가 참석했다.

두 번째 과제로는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모두가 잘 사는 성장을 위해 빅테크가 소상공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며 합리적 수수료 부과와 신속한 판매대금 정산, 가맹점 지원 확대를 당부했다.

세 번째로 위험 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빅테크 운영 리스크가 금융 안정의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빅테크가 모기업과 자회사를 아우르는 내부통제 체계를 자체적으로 구축해 실효성 있게 운영해 달라"고 밝혔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IT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했다. 이 원장은 "빅테크 플랫폼에는 수천만 명의 금융·상거래 정보가 집중돼 있어 전산 장애나 사이버 침해 사고는 곧 막대한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며 "보안을 단순한 비용 요인으로 보지 말고 최고 수준의 체계를 갖추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그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1997년 주주 서한에서 언급한 "장기적으로 보면 고객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일치한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고객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면 결국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며 "빅테크가 고객 가치와 신뢰 확보를 최우선 경영 원칙으로 삼아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혁신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