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정부가 ‘북미 포트리스’ 전략의 일환으로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의 전략 품목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공급망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CPTP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필요성을 앞당기고 있다고 평가한다. 멕시코, 1463개 품목에 최대 50% 관세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자동차·부품, 철강·알루미늄, 가전, 섬유, 플라스틱, 가구 등 17개 전략산업 1463개 품목에 대한 관세 인상 계획을 담았다. 현행 0~35%인 세율을 최대 50%까지 높이는 내용으로, 현재 의회 승인만 남겨둔 상태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줄이고 자국 기업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이번 조치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밝혔다. 멕시코는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157조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부는 이번 관세 인상이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태국, 튀르키예 등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韓 공급망 흔들릴 위기한국은 지난해 기준 멕시코 전체 수입의 3.62%를 차지하는 5위 교역국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그러나 멕시코와는 투자보장협정만 체결했을 뿐 FTA가 없어 관세 인상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다.
멕시코 시장은 한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못 미치지만, 자동차·철강·가전 등 주요 산업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현대차·기아는 한국산 강판과 부품을 활용해 멕시코 현지 공장에서 차량을 조립, 북미로 수출한다. 관세가 대폭 오르면 생산원가가 상승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철강 역시 주요 산업에 광범위하게 투입돼 있어 수입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가전업계도 현지 조립 비중이 크지만 핵심 패널과 칩셋은 여전히 한국에서 들여오고 있어 관세 인상에 취약하다.
반사이익 가능성도…CPTPP 가입론 부상다만 이번 조치가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반사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멕시코가 중국산 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한국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대체 공급처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멕시코의 아시아 수입국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 한국의 CPTPP 가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멕시코는 이미 CPTPP 회원국으로, 회원국 간에는 상당한 수준의 관세 혜택이 주어진다. 한국이 가입하지 못하면 중국 견제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상업계 관계자는 “멕시코의 고율 관세는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부담을 키우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며 “CPTPP 가입을 통해 관세 장벽을 낮추고 북미 공급망 내 입지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