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난다" 구금자 가족들 '날벼락'…美, 돌연 석방 연기

입력 2025-09-10 17:20
수정 2025-09-10 17:54
“눈물이 납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이네요.”(구금자 가족들)

10일(현지시간) 새벽 3시경, 엿새 간의 강제 구금 생활을 마치고 풀려날 예정이었던 3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 귀국이 갑자기 지연되면서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 구금센터 앞은 허탈감에 휩싸였다.

취재진은 물론, 동료들과 재회할 생각으로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달려온 각사 직원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했다. 저마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뾰족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구금센터 쪽에서도 분명 출국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순찰차를 비롯한 여러 차량이 분주히 오갔다. 구금자들도 9일 오후부터 센터가 지급한 베이지색 수용복을 벗고 잡혀 올 때 입었던 사복으로 갈아 입고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준비하기로 한 버스 8대는 예정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도, 일정도 없이 ‘연기’ 통보이들은 당초 10일 새벽 4~6시(한국시간 10일 오후 5~7시) 무렵 구금센터를 출발해 비행기(대한항공 KE-9036편)가 기다리는 430㎞ 거리의 애틀랜타 공항까지 다섯 시간 가량을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새벽 3시께 “10일 출발이 어렵다”는 외교부 발표가 전해졌다. 예상치 못하게 일정이 어그러지면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쪽에서 정해서 외교부에 통보한 것”이라면서 “언제까지 미뤄지는 것인지도 전달받은 내용이 없어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왜 석방 일정이 미뤄졌는지 모른다고 했다.

미국 측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은 만큼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단순한 가능성은 버스 운송 등 실무 진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다. 이 경우에는 문제가 곧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시카고와 보스턴 등에서 잇달아 대규모 이민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세력이 한국 근로자를 쉽게 내보내는 것에 반발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이 경우 근로자들의 귀국 시점이 상당히 지연될 수도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일 밤 급히 워싱턴DC를 찾았지만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면담이 9일에서 10일 오전으로 변경된 것도 이상기류의 징조로 해석되고 있다.
○향후 불이익 여부 확정 안돼 외교부에 따르면 귀국 인원은 미국에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자진 출국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원은 자진 출국을 선택했지만, 극소수 인원은 남아서 소명을 하고 재판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금자들이 풀려나더라도 재입국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미국 이민법의 규정에 따라 불법체류로 판단된 기간이 180일(약 6개월)에 미치지 않을 경우엔 재입국 제한기간이 없지만, 향후 비자 심사 과정에서 승인이 거절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외교 당국은 이 부분에 관해 미국 측과 계속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부 근로자들은 구금 초기 미국 정부가 자진출국자에게 주는 1000달러(약 140만원) 보상금을 받겠다거나 10년간 입국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상금에 동의할 경우 불법체류를 자인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또 10년 입국 제한은 추방 명령을 받고 출국하거나, 불법체류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에 적용되는 조건이다. B-1 비자나 ESTA 비자는 각각 6개월, 3개월 기한이기 때문에 이번에 체포된 이들 중 대다수는 1년 이상 불법체류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LG 협력사 측의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영사들이 이것(서명)이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고 미 당국과 이야기해 이전에 서명한 문서는 무효화됐다고 직원들에게 설명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이 혼란에 빠졌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비자문제 개선될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까다로운 미국 비자 발급이 현장 여건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한미 양국은 비자 문제 개선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비자 관련 규정을 바꾸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 정부 내에서 이 문제를 위해 대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이 고도로 숙련되고 훈련된 근로자들을 (미국으로) 함께 데려오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특히 그들이 반도체와 같은 매우 특수한 제품이나 조지아에서처럼 배터리 같은 것을 만들 때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이어 “국토안보부(이민 담당)와 상무부(투자 담당)가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에 관여하는 상무부의 목소리를 이민 당국의 의사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과의 면담이 무산된 9일 한국 기업 8곳의 지상사 관계자와 무역협회·KOTRA 등 경제단체와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기업 입장을 들었다. 기업인들은 이 자리에서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신설, 대미 투자기업 고용인 비자(E-2) 승인율 제고 등을 위한 노력과 함께 단기 상용비자(B-1)에 대한 미국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서배너에서 일하는 한 한국기업 법인장은 “지금으로서는 이민당국이 언제 다시 단속을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면서 “협력업체 관계자와 단기 출장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비자 조건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스턴=김인엽/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