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징역형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10일 최씨의 중상해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인정된다"고 했다.
앞서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한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성폭행에 저항한 정당방위였다"는 최씨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욱이 법원은 "남자로 하여금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면서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는 제외된 채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더 가벼운 형을 받았다. 최씨의 판결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렸다.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기록됐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어 2020년 5월 여성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과거 검찰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자백 강요, 협박 등의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1, 2심 법원은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최씨가 주장한 수사 과정의 불법 구금 등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부산고법은 올해 2월 최씨의 재심 청구를 인용했고, 사건 발생 61년 만에 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당시 대법원은 "재항고인은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부터 9월 1일까지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은 재항고인의 진술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반대되는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조사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최씨의 행동이) 사건에 대해 정당한 반응으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검찰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하지만 당시엔 그러지 못했다"면서 사과하며 무죄를 구형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검찰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구형을 했다"며 "이제 법원이 응답할 때"라고 입장을 전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