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구조 개편 중단은 미래 먹거리인 원자력산업 수출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원전 수출 권한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면서 한국전력공사와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수백억원대 소송 비용을 허비하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원전 수출정책(산업통상자원부)과 국내 원전 산업정책(기후에너지환경부) 관할 부처가 갈라지자 한수원 관할을 두고 ‘밥그릇’ 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전과 한수원은 지난 5월부터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운영지원용역 추가 공사비 정산을 둘러싸고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서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1조4000억원 규모 바라카 원전 추가 공사비 지급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결과 국제 소송이 벌어졌다. 현재 한전은 피터앤김, 한수원은 김앤장이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다. 중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양측이 부담하게 될 법률 비용이 최소 5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번 사태는 2016년 공공기관 기능 조정 과정에서 한전과 한수원에 각각 원전 수출 사업 권한을 부여하면서 시작됐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중단된 뒤 발전 공기업 간 사업 영역이 혼선을 빚자 정부는 ‘한국형 원전을 그대로 수출할 경우는 한전, 설계 변경이 필요한 경우는 한수원’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했다. 양측은 분쟁을 줄이기 위해 2022년 한전·한수원 사장이 참여하는 ‘원전 수출전략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정부 조직 개편 결과도 업무 혼선을 키울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원전 수출의 핵심 경쟁력을 갖춘 한수원의 관할 부처를 놓고 산업부와 기후에너지부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도 협업해야 하는 소형모듈원전(SMR)은 정부 부처 간 역할 구분이 더 모호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전 수출 창구를 지금이라도 일원화하지 않으면 기약 없는 소송전으로 비용은 비용대로 치르고, 한국 원전의 해외 수주 경쟁력은 크게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이광식 기자 hazzys@hankyung.com